[CEO 칼럼] 고향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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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6   |  발행일 2017-09-26 제31면   |  수정 2017-09-26
[CEO 칼럼] 고향 가는 길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다. 고향에 있는 혹은 뿔뿔이 흩어져 사는 가족, 친지를 만나기 위해 해마다 수백만 명 이상이 길을 떠난다. 귀성객을 위한 열차표는 몇 개월 전부터 동이 나고 전국의 고속도로는 갑자기 불어난 차량으로 꽉 막혀 몸살을 앓는다. 오죽하면 고향집보다 오고가는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다는 푸념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 가는 길을 떠나기 전 사람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들뜬다.

평소대로라면 3~4시간에 갈 거리도 반나절 넘게 걸리는 명절의 교통지옥 속에서도 마음속 내비게이션에 뜬 ‘고향’의 표상은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으로 이끈다. ‘고향’이라는 두 글자 속에는 낮은 지붕들이 머리를 잇댄 마을의 편안한 풍경과 전 부치는 고소한 냄새, 부모님의 거칠지만 따뜻한 손, 이런 모든 심상이 혼재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북극성처럼 반짝이는 고향의 빛을 의지해 길을 가는 것이다.

고향 가는 길이 고생스럽다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차도 기차도 없던 시절에 길을 떠났을 먼 옛날 조상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려보게 된다. 고대국가가 형성되면서 지역과 지역을 잇는 길이 닦이기 시작했고, 길과 길이 만나는 지점에는 역(驛)이 세워졌다. 역은 일반적인 지역의 행정 관청과는 별도로 세워진 교통·통신 등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말을 갈아타고, 허기를 달래고, 숙박을 위해 머무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역을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앙정부에서 지방으로 파견된 관리나 왕족들만이 해당됐다. 엄밀히는 관리라고 해도 공무를 보러 갈 경우에만 역을 사용하도록 했다. 역에 도착한 관리는 일종의 환승용 교통카드에 해당하는 ‘마패’를 제시하여 지친 말을 내어주고 새 말로 갈아탈 수 있었다.

손바닥 크기의 둥글고 납작한 마패에는 갈아탈 수 있는 수만큼 말이 새겨져 있다. 기록의 규정에 의하면 왕이 십마패, 영의정이 칠마패를 사용한다고 하나 실제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많은 말의 수는 오마패의 다섯 마리다. 종종 마패의 유일한 주인으로 오해받는 암행어사는 주로 이마패에서 삼마패에 해당하는 신분이었다. 공무가 끝나고 한양으로 돌아오면 마패는 반납한다.

마패를 훔치거나 복제해서 역마를 이용하려 했던 자는 극형에 가까운 벌을 받았는데 지금 무임승차를 하다 적발될 경우 운임의 30배를 벌금으로 부과하는 처벌이 애교스러울 정도다. 국방력의 핵심이었던 전마(戰馬)와 함께 공문서 전달, 공무 이동, 조세 운송 등 국가 행정의 주요 기능을 담당했던 역마(驛馬)를 소중히 여긴 까닭이다.

그래서 이 중요한 역마를 관리하는 역리들은 마필의 출납을 확인하는 것부터 생산, 건강 관리, 도난 방지 등 격무에 늘 시달렸다고 전한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관리나 왕족이 아니라도 모든 이들이 교통 시스템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대신 명절이 다가오면 고속도로와 철도처럼 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휴가도 뒤로 미루기 일쑤다. 고향 가는 길이 덜 고단한 배경에는 길을 관리하는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다.

실상 휴대폰 속 전자티켓이 종이 승차권을 대체하면서 대부분의 기차역에서 그 옛날 마패를 보여주듯 역무원이 직접 표를 받거나 확인하는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차량에 하이패스만 장착하면 고속도로 톨게이트도 그냥 통과한다. 아쉬운 것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며 그들의 존재까지 잊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역이나 터미널에서 마주하는 직원들 외에도 도로나 철로 보수 기술자부터 역사와 휴게소를 쾌적하게 관리하는 환경미화원, 기관사, 교통경찰에 이르기까지 길 어딘가에서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늘 있다. 올 추석에도 그들의 배려 덕분에 우리의 고향 가는 길은 행복할 것이다. 달처럼 환한 그 마음에 감사하며 길을 떠났으면 한다. 이양호 한국마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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