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종이비행기에 써보낸 고민거리 친구들과 해결해요”

  • 김유종
  • |
  • 입력 2017-09-25 07:53  |  수정 2017-09-25 07:53  |  발행일 2017-09-25 제18면
학원·시험 스트레스, 친구와 다툼…
다양한 고민에 서로 웃고 공감하기도
각자 진지한 해결책 제시하고 조언
친구들이 응원하는 글 읽고 힘 얻어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종이비행기에 써보낸 고민거리 친구들과 해결해요”
일러스트 =김유종기자 dbwhd@yeongnam.com

“선생님이 나눠 준 종이에 자신의 고민을 적어보세요.”

아이들에게 A4 용지를 나눠주며 말했다.

“아무거나 적어도 돼요?” 정답을 적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누군가가 되물었다.

“네, 아무거나 적어도 돼요.” 그러자 아이들의 연필 소리가 사각사각 들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뭔가를 적었다. 몇몇 아이들은 비밀을 들키기라도 할까봐 다른 한 손으로 적은 내용을 가렸다.

“다 적었나요? 그럼 고민 내용이 안쪽으로 들어가게 비행기를 접어보세요.” 내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하는 거예요?” “비행기 날리기 시합해요?” 궁금증이 많은 아이들은 손으로 비행기를 접으면서 입으로 연신 질문을 쏟아냈다.

“우선 접어서 비행기를 날릴 거예요. 단 친구들 눈에 닿지 않게 조심해서 날려야 해요.”

“선생님, 운동장에서 날리면 안 돼요?” “맞아요. 교실은 너무 좁아요.” 남학생들은 비행기 날리기 대회로 착각했는지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난 꿋꿋이 웃으며 스물한 개의 비행기가 교실 안에서 모두 날기를 기다렸다. 종이비행기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성격 급한 몇몇 아이들은 비행기를 다시 주우러 달려갔다.

“잠깐! 자신의 비행기 말고 여러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비행기를 주우세요.” 나의 말에 아이들은 순간 멈칫 했다.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여러분이 주운 비행기를 펼쳐서 다른 색깔 볼펜으로 고민에 대한 답변이나 해결책을 적어주세요. 진심이 담긴 답변이어야 해요.” 내 말이 이어졌다. 그제야 아이들은 무엇을 하는지 알겠다는 듯 표정이 밝아졌다. 비행기를 접었던 종이를 펼치니 울퉁불퉁 구겨져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진지한 자세로 친구의 고민에 답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고민을 적을 때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하며 적는 모습도 보였고, 구석구석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선생님, 고민이 없다는데 어떻게 답변해요?” “그럼 고민이 없어서 부럽다고 적어요.” 이러저런 답변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모두 답변을 적었다.

“다시 돌려줄까요?” “난 누군 건지 모르겠는데….” 아이들은 그새를 못 참고 또다시 졸라댔다.

“다시 비행기를 접어서 날리세요.”

그렇게 아이들은 똑같은 활동을 세 번 반복했다. 활동이 연거푸 반복될 동안 고민에 대한 답을 적는 아이들의 자세가 제법 능숙해졌다.

“이제 비행기의 원래 주인을 찾아서 돌려주세요.”

이름을 적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고민의 내용이나 글씨체를 보고 주인을 얼추 찾아냈다. 주인을 찾지 못한 서너 개의 비행기는 내가 직접 주인을 찾아줬다.

활동을 마치고 아이들의 소감을 들어보았다.

“친한 친구와 다퉈서 고민이라고 적었는데 솔직하게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라는 조언이 도움이 됐어요.” “반장인데 떠들어서 선생님 한테 자주 혼나는 게 고민이라고 적었는데,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 좀 더 노력하라고 적혀 있어서 힘이 됐어요.” 아이들의 솔직한 발표가 이어졌다. 장난기가 많은 반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놀랐다.

학원 숙제에 대한 부담부터 시험 스트레스, 친구 문제 등 다양한 고민이 있었다. 아이들은 무거운 고민거리를 함께 털어 놓고 웃기도 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기도 했다.

“고민이라는 말은 마음속으로 괴로워하며 속을 태운다는 뜻이에요. 오늘 여러분은 비행기에 고민을 담아 함께 날려버렸으니까 속을 태우며 괴로워하지 않길 바랄게요.”

아이들에게 조언을 하면서 나 또한 쓸데없는 걱정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 중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사건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것이고, 22%는 사소한 사건에 대한 것이고,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한 것이다. 즉,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96%는 쓸데없는 것이다.’

어니 J젤린스키가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란 책에서 말한 것처럼 쓸데없는 고민으로 아까운 지금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야겠다.

이수진<대구 시지초등 교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