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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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2   |  발행일 2017-09-22 제42면   |  수정 2017-09-22
하나 그리고 둘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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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SNS가 문제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 나름의 행복을 추구해 나가고 있는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는 주범은 단연 SNS다. 예전에도 뉴스를 통해 유명인사들의 화려한 생활을 접했지만 다른 세계의 이야기려니 했던 반면, 이제 내 친구와 동료가 보내는 휴가, 먹는 음식을 실시간으로 알게 되고, 나의 그것과 다시 실시간으로 비교하게 된다. 김치찌개와 편의점 커피로 즐거웠던 점심이 꽃등심과 유명 디저트 카페 얘기에 초라해진다. 부작용을 감수하면서도 SNS를 끊지 못하는 것은 간혹 유용한 정보를 얻기도 하거니와 나에게도 아주 가끔은 뭔가 공개하고픈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가령, 1년에 한두 번쯤 잘 나온 사진 같은 것들이.


성공한 동창에 열등감 느끼는 중년男의 자존감 찾기
주연 벤 스틸러 명불허전 연기…마이크 화이트 감독



‘브래드 슬론’(벤 스틸러)은 SNS를 통해 기부자와 기관을 연결하는 사업을 하지만 지금 그의 SNS는 잘나가는 동창들의 소식을 전하는 데만 바쁜 것 같다. 은퇴 후 하와이에서 환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빌리’, 갑부가 된 비즈니스맨 ‘제이슨’, TV에 종종 나오는 작가 ‘크레이그’ 등은 브래드의 열등감을 돋우는 존재들이다. 대학 때는 브래드가 모임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그가 가장 평범하게 살고 있는 듯 보이고, 정신적 공허함이 브래드를 괴롭힌다. 그런데 아들 ‘트로이’(오스틴 에이브람스)가 하버드에 갈지도 모른단다. 트로이와 보스턴으로 대학 투어를 떠난 브래드는 자신의 현재와 트로이의 미래를 겹쳐본다. 지금까지 갖지 못한 것과 앞으로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상상 속에 부유하는 가운데 브래드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본다. 매력적인 여대생 ‘아나냐’와의 대화, 크레이그와의 저녁 식사가 그에게 소중한 것들을 일깨우며 여행을 풍요롭게 한다.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감독 마이크 화이트/ 이하 ‘괜찮아요’)를 보는 가장 큰 기쁨은 문화권과 연령, 인종과 성별을 넘어선 공감대에 있다. ‘중년’에 접어든 ‘백인’ ‘남성’인 브래드는 우리 모두가 종종 스스로에게 던지는 답 없는 질문들 및 모순적인 감정들로 방황하고 있으며 영화는 차분한 내레이션으로 그 복잡한 마음의 실타래를 풀어 나간다. SNS를 통한 상대적 박탈감, 아들의 성공을 통한 대리 만족, 외피만큼 행복하지 않은 친구들의 삶 등 인생이 제시하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해 토론하듯 브래드의 여정에 동참하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져온다. 성공의 열쇠를 제공하는 연설문이나 지친 감정을 위로하는 격려의 메시지 때문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골목길에서 나와 비슷하게 헤매고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미 훌륭해요’ ‘그들도 사실은 불행해요’ 등의 식상한 교훈을 남기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 것도 큰 미덕이다. 아나냐가 브래드에게 뿌리 깊은 경쟁 심리를 지적하며 “당신은 이미 많이 가졌어요”라고 말할 때조차 영화는 감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지 않는다. 패배의식에 젖어 있다가도 어느 순간 큰 사건 앞에서도 삶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브래드를 통해 원래 인생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고 툭 내뱉는 태도가 기존 상업영화와는 다른 차원의 위로를 준다. 성찰의 결론을 내리기보다 과정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벤 스틸러는 브래드의 캐릭터 그대로 아주 평범한 가장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렇게 까칠하지도, 대단히 친절하지도 않고, 아주 뛰어나지도 않지만 무능력하지도 않은, 나의 배우자나 아버지와 비슷한 것을 먹고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인물을 스크린에서 ‘느끼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통찰력 있는 대사들, 중간중간 끼어드는 가정법, 상상 신 등에서 그가 연출과 주연을 맡았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벤 스틸러)와의 공통점도 발견된다. ‘괜찮아요’가 좀더 덤덤하고 어둡고 현실적인 뉘앙스의 드라마지만 주제의 깊이감이나 완성도는 공히 뛰어나다. 마지막 장면,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는 브래드의 모습이 진한 유대감을 남기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2분)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
데이빗 린치가 들려주는 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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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스타일이 뚜렷한 巨匠 감독에 관한 다큐멘터리
인생 발자취를 통해 독특·난해한 창작활동 원천 조명



‘데이빗 린치: 아트 라이프’(감독 존 구옌, 릭 반즈, 올리비아 니르고르-홀름)는 ‘이레이저 헤드’(1977), ‘엘리펀트 맨’(1980), ‘트윈 픽스’(1992) 등을 통해 낯선 세계를 시각화해왔던 데이빗 린치 감독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그의 개별 영화에 대한 메이킹 필름이나 해설을 상상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 다큐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영화를 찍기까지 아티스트로서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경험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그림을 그렸던 젊은 시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데이빗 린치의 난해한 영화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그 기저와 작가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면 꽤 도움이 될 만한 다큐다. 영화뿐 아니라 그림, 문학, 음악 등 일생을 다양한 창작 활동에 바쳐온 데이빗 린치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데이빗 린치의 열렬한 팬들이 프로듀서와 감독으로 참여한 이 다큐는 주인공의 영화들과는 달리 매우 친절하다. 그는 마이크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찬찬히 회상하며 어떤 특별한 경험이 어떻게 각인되어 작품에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한다. 어머니의 성격부터 아버지와의 일화, 방황했던 청소년기, 화가를 꿈꾸며 그림에 매달렸던 시기, 대학 시절을 거쳐 마침내 ‘이레이저 헤드’를 제작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 지적인 목소리는 그가 (주로) 회화 작업을 하는 영상 및 지금까지 만들어온 작품들 위로 흐르며 도슨트의 해설을 듣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다양한 방식으로 캔버스를 채워 나가는 작업 과정을 비롯해 사색에 잠긴 모습, 어린 딸을 돌보는 모습 등 데이빗 린치의 일상을 엿보는 소중한 경험도 제공한다. 클리셰를 모르는 이 창조적인 작가에 대한 존경 어린 시선이 깊게 깔리면서 다큐에 안정감을 더한다. “아무리 새로운 아이디어도 과거를 벗어날 수 없다” “너무 절제하거나 마음을 열지 않거나 한계를 정해놓으면 창의력은 죽는다” 등 실제 경험에서 나온 고백 혹은 예술관은 그의 뒤를 잇고자 하는 창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88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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