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혁의 중년 남자 이야기] 친구에게 보내는 가을 편지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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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2   |  발행일 2017-09-22 제39면   |  수정 2017-09-22
부디 젊게 사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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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염색 후의 모습. 마음만 먹으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마음 먹기가 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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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직원들과 함께 공연 관람 후 맥주 한잔. 젊은 사람들과의 소통은 젊게 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 새벽녘이면 절로 이불이 당겨지는 것이 이제 완연한 가을이네. 친구여, 잘 지내는가? 계절이 바뀐다는 게 우리처럼 나이가 쌓여가는 사람들에게 꼭 달가운 일만은 아니지. 그토록 좋아하던 낙엽과 첫눈이 이제는 간혹 원망스러울 때가 있다네. 어떻게든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은 욕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생각 아니겠나?

가는 세월을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겠냐만, 한창 때의 우리는 시간 앞에 머리 숙이지 않았네. 두려움이 없던 시절. 솜털같이 많은 날들. 청춘의 지루함을 원망하던 우리가 희끗한 머리의 중년이 되리라고는 그 시절에 차마 생각지 못했지.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가슴을 파고드는 나이가 마침내 오고 말았네.

세월 앞에 장사없다는 말 실감하는 나이
숫자로 대변되는 나이는 안 먹기로 결심
청년으로 가장 무르익은 서른여섯에 멈춰
타인 의식 않고 내 가슴이 시키는 일 열중

대학시절 중늙은이 소리 듣던 자네 역시
늘 해보고 싶던 일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입·귀·생각을 열고 젊은 세대와 소통
틈틈이 신간도서로 새 세상도 경험하길


자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간만에 펜을 들었다네. 친구여, 부디 젊게 사시게나. 요즘 종종 아재 소리를 듣다보니 문득 자네가 떠오르더군. 대학 시절부터 중늙은이, 큰삼촌, 복학생 소리를 듣던 자네가 사뭇 걱정이 되네.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쓸쓸히 늙어가고 있을는지. 생각만으로도 콧잔등이 시큰해지네. 지금부터 젊게 사는 노하우 몇 가지를 귀띔해 줄 테니 남은 인생 젊게 살아보는 게 어떤가?

요즘 누가 나이를 물어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네. 서른여섯에서 멈추었습니다. 그러면 반쯤 정신 나간 사람을 보는 시선으로 다시 묻지. 왜 하필 서른여섯입니까? 청년으로 가장 무르익을 때니까요. 누구의 말마따나 나는 아직 청춘이라고 생각하네(물론 서른여섯의 나이에 맞춰 멈춰버린 정신 연령도 큰 역할을 했지). 앞으로는 숫자로 대변되는 나이는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네.

하지만 말로만 그렇게 한다고 실제 그리되는 것은 아니겠지. 젊게 살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과 용기가 필요하네. 이제부터 잘 듣게나. 젊게 사는 노하우 그 첫 번째,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일세. 카약을 타고 대서양을 횡단한다거나, 킬리만자로에 올라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표범과 대화를 나누는, 그런 황당하고도 거창한 것이 아니라네.

늘 해보고 싶었는데 나이값 못한다는 말을 들을까 봐 망설였던 일, 어찌어찌 살다보니 때를 놓친 일들을 실행으로 옮겨보라는 거야. 얼마 전에 머리를 은회색으로 염색했다네. 사십대 중반의 나이에 노망이라도 들었나 싶은가? 아니라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 가슴이 시키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거지.

결과는 대만족이었네. 주위의 반응도 예상외로 우호적이더군.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며 보낸 지난 세월이 후회되었네. 단순히 머리카락 색깔 하나 바꾼 것뿐인데 껍질을 까고 새로 태어난 기분이랄까? 삶에 엄청난 청량감이 생기더군. 앞으로 타투나 나이트 댄스 같은 금기(?)의 영역에 도전해 볼 생각이네.

두 번째는 젊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네. 옛말에 나이 들면 입을 다물고 지갑을 열라는 말이 있지. 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네. 물론 나이 들었다고 꼰대처럼 훈계만 늘어놓지 말고 경청하라는 의미라는 건 알겠네만, 내 생각은 좀 다르네. 그렇게 입 다물고 초대받지 못한 사람처럼 앉아 있다가 계산이나 해주고 쓸쓸히 퇴장하는 모습은 얼마나 고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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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이렇게 수정되어야 한다네. 나이 들면 입과 귀와 생각을 열고, 지갑에서는 1/N만큼만 꺼내서 함께 계산하라. 입과 귀를 열고 젊은 세대와 소통해 굳어가는 생각을 유연하게 만들며, 그들의 방식에 맞게 계산 습관도 바꾸라는 말일세. 괜한 허세부리고 다음 날 카드 전표 보며 눈물을 삼킨 적이 어디 한두 번인가?

스무 살가량 차이가 나는 젊은 직원들과 함께 일하다보니, 그들과의 소통을 위해 사실 많은 노력을 한다네. 최신곡을 다운 받아 연습도 하고, 타고난 몸치지만 회식 때 실내 야구장에 가서 방망이도 휘두르지. 정기적으로 대학로에 가서 공연도 보고, 격의 없이 소줏잔을 기울이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네. 그네들은 내게 먼저 살아간 자의 조언을 구하고, 나는 그네들에게 내가 미처 따라잡지 못하는 시대의 변화상을 묻곤 하지. 그것이 소통일세.

마지막으로, 틈나는 대로 신간 도서 읽을 것을 권하네. 나는 요즘 새벽에 일어나 한 시간씩 고전문학을 읽고 있다네.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부터 호메로스와 소포클레스까지, 내용만 대충 알고 읽은 것처럼 위선을 떨던 작품들을 꼼꼼히 들춰보고 있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진리를 깨닫고, 다양한 보편적 가치들에 나름의 정의를 내리며 인생의 진정한 맛을 조금씩 느끼고 있지.

하지만 낮 시간이나 여유가 있을 때 내가 주로 읽는 것은 신간일세. 특히 젊은 작가들의 소설 속에는 날것 그대로의 세상이 녹아들어 있지. 그것을 통한 간접 경험은 자네를 젊음의 영역으로 인도할 것이야. 정신적 기력이 없어 서서히 낙오되다가 어느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순간 우리는 고집불통의 영감쟁이로 늙어갈 것이네.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좋으니, 관심 분야의 신간 혹은 베스트셀러는 가급적 찾아 읽으시게나. 베스트셀러라고 다 좋은 책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많이 읽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네. 텔레비전과 신문을 보지 않는 자네 같은 사람이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책뿐이라네.

이제 글을 맺어야 할 시간이네. 젊게 사는 방법이라 해서 피부 관리나 모발이식 같이 젊어 보이는 방법에 대한 기대를 했다면 실망했겠군. 기실, 겉모습이야 세월의 풍화를 겪다보면 자연스레 만들어지는 것이니 역행한다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이지. 육신의 노화를 붙들어 맬 수 없다면 정신과 영혼이라도 덜 늙게 살아보자는 말일세.

우리 나이쯤 되면 안정이 가장 큰 삶의 지표처럼 여겨지지.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안정은 일종의 늪과 같아서 한번 빠져들면 쉽게 변화를 주기 어렵지. 행동하기도 생각하기도 귀찮다가 그렇게 미라처럼 죽어가는 삶. 우리, 그렇게는 늙지 않기를. 눈 감는 그날까지 열정을 간직하고, 어제와 다른 나를 찾기 위한 설렘으로 살아가기를.

칼럼니스트 junghyuk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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