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슈퍼갑이 된 반려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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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0   |  발행일 2017-09-20 제30면   |  수정 2017-09-20
반려견 1천만 마리 시대
특별한 신분 슈퍼갑 등극
일부는‘가족’으로 품지만
일부선 ‘식용’으로 취급
공감대 형성 공청회 절실
[동대구로에서] 슈퍼갑이 된 반려견

주말의 밤,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의 한 휴게소 앞. 일대는 돌연 반려견 번개팅 장소 같다. 송아지만한 사냥견에서부터 인형 같은 푸들까지 총출동이다. 한 견주는 나무에 반려견을 묶어놓은 채 잠시 조깅하러 자리를 떴다. 그 반려견은 갑자기 사자처럼 컹컹 짖어댄다. 지축이 울릴 정도다. 주위 시민들의 표정은 제각각. 견주들은 이해하는 눈치지만 심기가 불편한 쪽도 적잖았다.

결국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한 시민이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른다.

“완전 X판이네. 보신탕 주인들은 뭐하고 있노, 왈왈대는 XXX 싹 잡아가지 않고.”

발끈한 한 견주가 정색하며 나선다.

“선생님,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거 아닙니까. 개가 뭡니까.”

한 쪽은 개를 ‘식용’, 또 한 쪽은 ‘식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드 찬반 시각 못지않았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마이카 못지않게 폭증한 반려견. 그들을 향한 견주들의 애정은 상상초월. 반려견이 갑자기 현대사회의 절망·고립·고독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려견은 누구에겐 식구라는 이름의 ‘약(藥)’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인간의 범주로 각인되는 순간, 인간과 동물의 경계 구분도 애매해진다. 우린 반려견의 순기능과 함께 역기능에도 대처해야 된다.

반려견으로 인한 이런저런 우울한 일들이 예고된다.

어느 날 결혼 1개월을 갓 넘긴 아들이 어머니한테 이혼을 선언한다. 내막은 이렇다. 아내의 일상은 오직 반려견뿐이다. 개털 알레르기가 있는 남편은 반려견을 싫어한다. 하지만 아내는 신혼여행 갈 때도 반려견을 챙겼다. 남편은 속이 무척 상했다. 심지어 반려견과 함께 동침하자는 제의를 했을 때도 허니문 기간이다 싶어 꾹 참았다. 그런데 아내는 설상가상. 남편 끼니는 거의 배달음식이었다. 반려견에겐 최고급 유기능 먹이로 직접 조리해 대접했다. 남편은 속으로 ‘개는 음식을 대접하고 자기는 먹인다’고 믿었다. 남편 아픈 건 개의치 않고 반려견이 조금 탈나면 사색이 될 정도였다. 남편은 반려견보다 더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새 출발했다.

어느 반가의 기제사. 갑자기 제주인 할아버지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할아버지는 보신탕은 좋아하지만 반려견은 질색이다. 특히 제사 때 반려견이 얼씬거리는 건 묵과 못한다. 몇 번 경고했건만 도무지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특히 평소 끔찍이 사랑했던 손녀는 반려견이 자기 수호천사다. 제사 때만은 반려견 없이 오라고 아들 내외한테 엄명을 내렸다. 그런데 무시한 것이다. 이날 따라 반려견은 유별스럽게 짖어댔다. 그래서 참다못한 할아버지가 반려견을 현관문 밖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이에 손녀는 말할 것도 없고 며느리까지 씩씩거리며 할아버지 쪽을 한 번 힐끔 쳐다보더니 문을 쾅 닫고 사라져 버렸다. 할아버지는 벌벌 떨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제사는 풍비박산됐고 아들은 한숨을 내쉬며 천장만 올려다 본다.

어느 날이었다. 모 회사 간부들이 회사 인근 식당에 모여 긴급 대책회의 중이다. 동고동락하던 회장의 반려견이 죽은 것이다. 단순한 반려견이 아니다. 이혼하고 혼자 사는 회장의 고독한 맘을 유일하게 잘 헤아리던 놈이었다. 그래서 회장은 더 슬픔이 컸다. 그래서 인간과 같은 방식의 빈소를 차리기로 맘을 먹는다. 한 간부가 이 사실을 회사 임원들한테 알린 것이다. 이런 사태를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간부들은 고심 끝에 ‘정승집 개가 죽으면 정승집에 문상을 가야 된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간부들은 개의 영정 앞에서 분향재배했다. 다들 속으로 ‘정말 이래도 되는 거 맞아’라며 독백을 했다.

반려견 1천만 시대를 맞았다. 지금 우리 주위에 위의 사례 못지않는 일들이 빈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는 전무한 실정이다. 반려견 공감대 형성을 위한 국민 대공청회가 절실한 시점이다. 어느 순간부터 반려견은 특별한 신분으로 등극했다. 인간 위에 군림하는 ‘슈퍼갑’ 같달까. 묻고 싶다. 반려견은 과연 인간인가 동물인가. 이춘호 (주말섹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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