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국무총리의 재발견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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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8   |  발행일 2017-09-18 제30면   |  수정 2017-09-18
내부 향해서도 거침없이
‘사이다 발언’ 쏟아내는
언론인 출신 이낙연 총리
靑·여당에서 하기 어려운
‘쓴소리 총리’ 역할 기대
[송국건정치칼럼] 국무총리의 재발견

“민주당에서 작성한 ‘방송장악 문건’이 나왔다. 잘된 일이냐 잘못된 일이냐”(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짓이 잘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이낙연 국무총리),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런 걸 했으면 당장 탄핵한다고 하지 않았겠나”(이 의원)→ “전문의원실 실무자가 탄핵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이 총리).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오간 내용이다. 앞서 한 언론은 민주당이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진 퇴진을 목표로 한 ‘언론적폐 청산’ 문건을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한국당은 이를 ‘방송장악 문건’으로 규정하고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과거 총리 같으면 이런 민감한 문제엔 “정치적 사안에 입장을 밝히기 적절하지 않다”며 어물쩍 넘어갔을 거다. 하지만 이 총리는 여당의 ‘쓸데없는 짓’을 타박했다. 그러면서도 정권 차원이 아닌 실무진의 ‘과잉 대응’ 탓으로 슬쩍 돌렸다.

이 총리는 이번에 국회 대정부질문 데뷔전을 치르면서 ‘사이다 발언’들을 쏟아냈다. 가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제한적이나마 ‘쓴소리’도 곁들였다. 지난 11일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문재인정부의 가장 아쉬운 점 중 하나가 협치(協治)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대목이 대표적이다.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이 ‘문재인정부의 협치가 낙제점이라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망설임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도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야당도 여·야·정 협의체 구성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이 총리는 문 대통령 핵심 측근을 호되게 꾸짖는 모습을 보이기도 보였다. ‘살충제 계란’ 파동 때 초동 대처가 미흡했던 류영진 식약처장에게 “제대로 답변 못 할 거면 기자들에게 브리핑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류 처장이 이를 두고 ‘총리께서 짜증을 좀 냈다’고 하자 “짜증이 아니라 질책”이라며 군기를 잡았다.

물론 류 처장을 강하게 질책한 걸 놓고는 야당의 사퇴 공세를 물타기 하기 위해서란 해석도 나온다. 또 대정부질문에서의 일부 답변은 야당의 시각에서 성의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국회의원 시절 명대변인 출신답게 언어유희를 즐긴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정부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얻은 게 뭔가. 핵과 미사일인가’라고 묻자 “지난 9년간 햇볕정책과 균형자론을 폐기한 정부가 있었다. 그걸 건너뛰고 이런 질문을 받는 게 뜻밖이다”고 답했다. 질문 취지를 알면서도 되치기로 말문을 막아버렸다. 진보정권을 위해 이 정도 방어막을 치는 건 이 총리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다. 대신 그에게 기대하는 건 ‘쓴소리 총리’ 역할이다.

사실 지금의 헌법체제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일정 부분 위임받는 ‘책임총리’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몇몇 총리가 그런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론 대통령의 묵인 아래 흉내 정도를 냈을 뿐이다. 새 정권에 힘이 쏠려 있는 집권 초기엔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행정부 수장으로서 적당한 때를 골라 청와대 참모나 여당 지도부가 하기 어려운 직언만 제대로 해도 성공한 총리가 될 수 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가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촛불민심만 믿고 가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지금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필자는 ‘정치부 기자 이낙연’ 시절을 기억한다. 기개와 사명감이 남달랐다. 그래서 몇 개의 곁가지를 들어내고 본질적인 부분만 평가하면 모처럼 역할을 제대로 하려는 총리를 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초심만 잃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 논란이 반복되는 현행 헌법체제에서 국무총리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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