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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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6   |  발행일 2017-09-16 제23면   |  수정 2017-09-16
20170916
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

‘참’이라는 말은 사실이나 어긋남이 없고, 그 바탕이 진실하다는 뜻을 가진 참 괜찮은 말이다. 참기름, 참개구리, 참조기, 참깨처럼 어떤 낱말의 앞에 붙어서는 그 무리의 기준이 되거나 으뜸가는 품종을 증명한다는 품질보증서와 같은 기능의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이름 앞에 ‘참’ 자가 붙어 있으면 뭔가 진실하고 특별할 것 같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 것이다.

참나무도 분명 그런 속뜻이 있어서 ‘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원래 참나무는 한 품종의 나무를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라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 즉 갈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등 도토리 육형제를 모두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이 나무들이 이름에 ‘참’을 달고 나무 무리의 으뜸이 된 것은 아마도 그 쓰임새 때문이 아닐까 싶다.

참나무는 다른 재료의 도움 없이도 집 한 채를 거뜬히 지을 수 있다. 기둥으로 설 수 있고, 대들보로 얹히고, 서까래로도 깔린다. 거기에다 굴참나무의 두꺼운 껍질은 예전부터 굴피집의 지붕재로 쓰여 왔다. 이렇게 집을 짓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방을 데우는 땔감으로 참나무만 한 게 없다. 참숯은 어떤가. 높은 열량으로 인해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최고의 연료가 되었다. 표고버섯을 키우는 골목(骨木)으로 참나무를 따라올 나무가 없다. 무수히 달려 있는 도토리로는 묵을 쑤어 먹거나 녹말을 만든다. 어렵던 시절 영양실조로 누렇게 뜬 얼굴을 구제한다는 구황식물로 도토리의 역할은 컸었다. 이렇게 그 쓰임이 인간을 위해 다양 다기하였으니 이름 앞에 ‘참’이라는 글자를 달 만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참새가 ‘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연유를 모르겠다. 참새는 참 볼품이 없는 새다. 작고 가벼워서 경박하기 그지없고, 짹짹거리는 소리는 견딜 수 없는 소란을 불러오는 비호감의 새다. 가을이 되면 떼를 지어 몰려와 곡식을 훑어가니 농부들에게는 천적같이 미운 존재다. 그런데 어떻게 새 중에서도 기준이 되고 으뜸가는 참새가 되었을까.

풍설에 따르면 옛날 어느 임금께서 참새의 폐해가 심해서 아예 몰살시책을 펼친 적이 있었다 한다. 시책의 의지가 워낙 강해서 몇 년 만에 참새는 멸종위기로 내몰렸다. 그런데 문제는 참새 떼가 사라지고 나니 그보다 무서운 병충해가 이어지더라는 것이다. 참새는 여름철에는 벌레를 잡아먹고, 가을에는 곡식으로 그 노고를 보상 받는 새다. 그 순리를 모르고 작은 것을 아끼려고 전체가 쓰러지는 길을 택하였으니 저마다 본연의 역할이 있음을 몰랐기 때문이다. 작은 참새가 할 일을 어찌 매와 독수리가 대신 할 수 있겠는가. 알곡을 털어가는 괘씸함은 있지만 더 크게 농사를 거드는 새가 참새였으니 이 역시 ‘참’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하지 않았겠는가.

오늘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저런 동물이나 식물에 ‘참’이라는 이름이 제법 붙어 있다. 어느새 우리들이 즐겨 먹는 소주에도 슬그머니 ‘참’을 붙여 놓았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이름표에는 ‘참’이라는 글자를 붙여 놓은 곳을 찾지 못하겠다. 참대통령이니 참국회의원이니 참시장이니 하는 이름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없어서 못 부르는 것인지, 있어도 안 부르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의 시절을 태평성대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난국에 우리의 좌표가 되고, 으뜸이 되는 ‘참사람 누구’ ‘참인간 누구’라는 이름을 한번 들어보고 또 불러보고 싶다.홍억선 한국수필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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