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대구 대표시장 라이딩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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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5   |  발행일 2017-09-15 제37면   |  수정 2017-09-16
알면서도 잘 몰라 낯선…‘일상의 극장’ 市場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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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깊게 잠든 새벽 2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대구의 채소전문시장인 팔달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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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식자재 중심의 칠성시장에 있는 한 보리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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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대현동에 있는 동대구시장 노점상의 아침. 영업 준비에 한창이었다.

2017년 여름은 또 아쉬움을 던지며 사라진다. 자전거 바퀴는 인력거가 되어 그 어디 보다도 사람 냄새 풍기는 풍경으로 달린다.

대구 최대의 채소전문시장인 팔달시장을 알아보게 된 건 북부정류장 근처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난 뒤 오가며 두 눈으로 목격하고 나서부터다. 새벽녘 피곤에 젖어서 집으로 가는 길에 발견한 광경은 졸음을 날려버리는 내 안의 일상의 경이로움이었다.

익숙한 장소를 여행하다보면 아는 곳이지만 때론 낯선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우리 사는 일상이 여행이라면? 모르던 것을 부지불식간에 알게 해주는 것으로 일상 속 자전거여행보다 나은 게 있으랴. 익숙한 곳으로 새로운 마음으로 찾아가는 도전정신을 발휘해 대구 대표시장의 라이딩 지도를 그려보았더니, 테마여행으로 추천받을 수 있는 그림이 나왔다.

새벽녘 활기 넘치는 대구경제의 실핏줄
오전 6시 대구 최대 채소전문‘팔달’서
10시 ‘동대구’까지 자전거로 시장 여행

달공시장은 흡사 세계 최고 글로벌마켓
교동 귀금속거리는 젊은 시장 발돋움
식자재·음식료품 유통의 중심 칠성시장
저마다 특성화·전문화 사람냄새 폴폴



‘팔달 채소시장 ~ 비산네거리 ~ 인동촌 시장(묵자골목) ~ 달공시장(달성공원 새벽시장) ~ 서문시장 ~ 북성로 공구시장 ~ 교동시장 ~ 번개시장 ~ 칠성시장 ~ 동대구시장.’

재래시장 이름이 어쩌다 전통시장으로 바뀌었다. 인간의 역사에서 시장은 원초적 극장이었을 것이다. 마트의 등쌀에 늘 “나 죽겠네 나 죽겠네!” 아우성을 치면서도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상인들과 더불어 시장이 영원하리라는 믿음으로, 새벽에서 아침으로 가는 길을 보러 페달을 밟았다.

재래라는 말은 미래를 엮어낸다. 재래시장이 전통시장으로 이름이 바뀌었어도 미래시장을 내포한다. 시장의 미래인 재래시장! 이것이 주마간산 격으로 세상을 들여다보고 달리는 포토바이킹이 인간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맡아 부지런히 살아가는 시장 상인들에게 드릴 수 있는 민생예찬이다.

대구라는 도시와 한몸의 역사를 일궈낸 재래시장은 무슨 꿈을 꾸며 새날 새손님을 맞이할까? 북부정류장에서 구미행 첫차가 출발하는 오전 6시에서 동대구시장 노점상 할매가 파라솔을 펴는 10시 사이에 보고 느낀 시장통 기록이다.

북부정류장에서 팔달시장으로 가는 소방도로인 서대구로62길은 대구시가 무관심한 사이 부동산 시장경제가 만든 세계 다방의 메카다. 제법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다방 간판을 내건 거리는 휑하다. 1㎞쯤 되는 이 긴 거리에서 많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팔달로와 만나는 62길 끝 모퉁이는 낮에 한 팔 잘린 과일장사 사장님이 구걸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계신 곳이다. 더 좋은 과일을 구해오기 위해 길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라는 화를 당했지만 이를 툭툭 털어내고 일어선 오뚝이 삶의 현장이라 기억된다.

길 건너 팔달시장 사인조명은 어두울수록 빛난다. 시장 건물에 ‘전통시장 살리자며 마트 허가 웬말이냐’는 머리띠를 두르고 영업 중인 오전 6시 무렵 팔달(신)시장의 새벽에 본 광경보다는 생동감이 반감됐다. 늦었구나! 도매시장이라 오토바이와 짐자전거가 부리나케 오가는 장면들은 세계테마기행에 나오는 동남아의 어느 도시를 연상시킨다. 상인 70%가 채소류를 취급하고 있는 팔달시장의 푸른 삶은 아침이 오기 전 새벽에 가볼 만한 인생길 여행지라고 생각된다.

수정맨션이 있는 고성로를 지나며 예림어린이집을 거쳐 이어지는 코스는 원대네거리~비산지하차도~북비산네거리 순이다. 북비산네거리 농협 옆엔 튀김을 애살맞게 파는 아줌마 사장님이 있는 원고개시장이 있으나 영업 시작 전이라 건너뛴다. 달성공원 방향으로 200m쯤 가면 기아모터 길 건너 횟집간판을 한 샛길로 인동촌시장 공영주차장 가는 길이 나온다. 인동촌시장 이름은 장씨들 집성촌이었다는 특색을 간직한 흔적이고 지금은 아나고로 이름을 얻어가는 먹자골목이다. 인동촌시장의 진경은 아침에 구경할 수 없으니 밤풍경을 찾아가야 제맛을 본다.

인동촌 묵자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달공시장으로 향하는 쇼핑객들이 눈에 들어왔다. 달성공원 앞 달공시장은 달성공원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그렇게 풍족하진 않지만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새아침이 열리는 곳이다.

대구 젊은이들이 똘똘 뭉쳐 만들어낸 신내당시장처럼 달성공원 새벽시장으로 이름난 달공시장은 대구서민들이 만들어낸 월드베스트 글로벌마켓이다. 주말 달공시장의 풍경은 세상에서 최고라 할 만한, 사람구경을 할 수 있는 장관이 펼쳐진다. 그 시간(6시30분경) 서문시장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찾아보았더니 도로 한가득 건어물 하역을 하고 있었다. 영업을 시작한 곳은 시장 입구의 양곡상 몇 집이었다. 서문시장 구경을 간단히 마치고 달공시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현동에서 달성공원 앞으로 이사를 한 착한순두부 가게를 발견하고는 반가워서 인사를 하러 들어갔는데, 사장님이 바뀌었다고 했다. 섭섭한 마음이 일었으나 가게를 인수한 사장님 내외와 말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출출한 김에 간식으로 콩물로 만든 3천원짜리 콩국을 한 그릇 했는데 콩가루 국물과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시장통 모든 가게들이 저마다 이런 맛을 내면 미래시장이라는 명성을 얻게 될 터이다.

달공시장에서 북성로 공구상가로 향하는 길에 만나는 대한제국 2대황제 순종 동상을 보면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를 다룬 마거릿 맥밀런의 ‘역사사용설명서’가 떠오른다. “우리가 이미 하기로 결심한 것들을 정당화하려고 과거의 근거를 입맛대로 취하다 보면 우리 자신을 기만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그는 “역사를 사용하고 즐기되 신중하게 다루어라”고 했다.

오전 7시40분경에도 북성로 공구상가의 아침은 밝아오지 않았다. 더치커피 기구 만드는 과정에 도움을 받은 대복볼트 사장님의 뒷모습이 보이고 영업 준비를 마친 북성상사도 눈에 띄었다. 북성로 공구상가 거리를 지나다 보면 세련된 장식을 한 공구상점 아닌 점포들이 고전하는 모습을 들어가 보지 않아도 알게 된다. 북성로엔 한여름에도 찬바람이 분다. 북성로가 공구상가로 특색화·전문화 되도록 돕는 행정의 손길이 아쉽다.

중앙대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지척의 교동시장은 일부 만물상과 음식점을 빼고는 철시상태였다. 수입 물건들이 있는 교동시장은 글로 표현하기 힘든 매력이 있는 곳이다. 즐겨 찾고 안 찾고는 직접 경험하는 것이 답이다. 시장의 특색이 누구네 음식점으로 대표 되고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유행 또한 지나가리라. 교동 귀금속거리는 세대교체된 흔치 않은 젊은 시장으로 발돋움한 것 같다.

교동시장 건너길 대구역 옆엔 이른 아침에 반짝 섰다가 이내 없어진다고 이름을 얻은 번개시장이 있는데 지금은 상설시장으로 발전했다. 오전 7시50분경의 번개시장은 손님맞이를 끝낸 점포들은 많았으나 손님이 오지 않아 장이 열리지 않은 상태였다. 시장 안에 붙어 있는 농협 태평공판장을 찾았는데 평상시에 볼 수 없는 경매 광경을 목격했다. 호기심이 발동, 풀리지 않은 궁금증 해소를 위해 과일야채 장사를 하고 있다는 여사장님께 “저게 무슨 소리냐”고 여쭸더니, “40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잘 못 알아 듣는다”고 귀띔했다. 거기에서 외국말 보다 어려운 모국어를 만났다. 오전 8시경 공판장에 경매 나온 과일들은 어떻게 낙찰을 받았는지 알 수 없는 임자들에게 팔려나갔다.

인간생활에 기본이 되는 상품들이 거래되는 재래시장들은 대부분 먹을거리를 팔고 있다. 대구에서 농수산품, 식자재, 음식료품 유통의 중심은 칠성시장이 떠맡고 있는 것으로 안다. 칠성시장은 음식료품 경영자들이 찾으면 비용을 덜 수 있는 고민풀이 시장이다. 8시30분경 도착해 본 칠성시장은 평소(10시경)보다 한산했다. 사람 구경하는 맛이 반감된 시장에서는 물건 구매로 허기를 풀면 그만이다. 모처럼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고 보리밥집들이 늘어서 있는 청과물시장으로 들어갔다. 칼국수집 육수솥이 맛있어 보여 칼국수를 주문해 먹고 나서는데, 자그마하게 종로대풍이라고 쓴 보리밥집 앞에서 종로 진골목을 떠난 할매식당 사장님을 만났다. 식당에서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안부를 여쭙고 재래시장 자전거여행을 마쳤다. 시장에서만 맡을 수 있는 이같은 사람냄새는 마트가 넘보지 못하는 경쟁 포인트다. 저마다 특성화·전문화로 살아가고 있는 재래시장은 인간의 미래를 보여주는 일상의 극장이라는 여행후기를 전한다.

인물 갤러리 ‘이끔빛’ 대표 newspd@empas.com

☞ 라이딩 코스

북부정류장∼팔달 채소시장∼인동촌 시장∼달공시장∼서문시장∼북성로공구시장∼교동시장∼번개시장∼칠성시장∼동대구시장

[서태영의 포토 바이킹] 대구 대표시장 라이딩
오전 9시, 대구역 옆 번개시장 농협 태평공판장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진행된 청과물 경매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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