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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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5   |  발행일 2017-09-15 제36면   |  수정 2017-09-15
빗발치는 55개의 총알, 그리고 구멍난 철모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호국평화기념관의 중앙 홀. 구멍난 철모와 55개의 총알이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상징한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55일간의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주제로 2015년 건립된 국내 최대 호국공원이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어린이평화체험관. 7살 이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전투체험관.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당시의 마을 모습으로 꾸며져 있다.


낙동대로. 곧게 뻗어 낙동강과 나란하다. 울타리에 가려져 강은 드물게 보인다. 구름이 두껍다. 가실성당 뾰족한 첨탑을 지날 무렵 한두 방울 빗물이 차창에 부딪쳐 깨어진다. 강냉이 튀기는 듯한 고소한 냄새가 난다. 한 해 전 즈음 이 길을 달리며 이정표를 본 적 있다. 칠곡 호국평화기념관. 호국과 평화를 함께 삼키면 피 맛이 난다. 아마 그래서 바라보지 않고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왜관전적기념관 지나 언덕 나선형 건물
6·25 낙동강방어선 55일간의 격전 기록
타임터널 등 통해 당시 戰場 체험 생생

보초를 서고 탱크에 오르고 총도 쏘고…
328고지 마지막 전투를 담은 4D영상관
6분여 적군과 실제 같은 육탄전 경험도

◆그때로 가는 길

이맘때다. 1950년 8월1일부터 9월24일까지, 낙동강방어선전투 55일 중의 한가운데가. 길가에 ‘낙동강 세계평화 문화 대축전, 낙동강지구 전투 전승행사’ 플래카드가 군데군데 걸려있다. 이맘때면 그때 55일의 마지막 며칠이 낙동강변에서 다시금 일깨워진다. 강변 행사장의 각종 프레임들이 눈에 들어올 무렵 저 언덕 위에 올라 서 있는 호국평화기념관이 보인다. 건물은 나선형으로 상승하는 모습이다.

낙동대로에서 빠져나가자 참호처럼 위장막을 둘러쓴 버스정류장이 있다. 그 맞은편에 왜관지구 전적기념관이 먼저 자리한다. 마당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나이키 유도탄이 서 있고 하늘색의 관측용 비행기가 착륙해 있다. 그리고 대공포, 직사포, 곡사포가 나란히 포열을 하늘로 향한 채 앉아 있다. 1978년에 준공되었다는 왜관지구 전적 기념관은 간소한 규모다. 내부에는 전쟁 때 사용된 무기들과 우리나라의 발전상, 북한의 모습 등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밝고, 원색으로 디자인되어 화려하다.

전적기념관을 지나고 전적 기념비를 지나 호국평화기념관으로 향하는 길고 좁은 계단을 오른다. 곁에는 에스컬레이터도 운행되고 있다. 기념관 앞에 호국의 광장이 펼쳐진다. 광장에 오르고 나서야 기념관 오른쪽 아래에 넓은 주차장과 넓은 계단과 램프와 엘리베이터가 있음을 알게 된다. 매표를 하는 사이 수십 명의 아이들이 우르르 광장을 가로지른다. 띠 모양의 표를 손목에 두르고 호국평화기념관으로 들어선다.

◆호국평화기념관

둥근 중앙홀의 한가운데에 구멍 난 철모가 놓여 있다. 그 위 천장에서부터 55개의 총알이 떨어지고 있다. 55일간의 낙동강방어선전투를 상징한다. 4D상영관의 문이 열리면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고요하던 홀이 벅적해진다. 내부는 전시실과 체험관, 북 카페, 상영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아이들을 헤집고 호국 전시실로 향한다.

호국 전시실은 타임터널을 통해 지금에서 그때로 거슬러 간다. 그곳에 도달하면 전쟁은 순차적으로 보이고 들린다. 전시실은 어둡다. 사람의 기척에 따라 시작되는 영상과 음성으로 인해 차라리 어둠의 깊이가 상쇄된다. 전쟁의 과정이 당시의 영상으로 설계되어 있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육성이 들린다. 유해 발굴현장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고, 그때의 사람들이 품고 있었던 여러 유물도 볼 수 있다. 추모의 공간은 소박하지만 숨을 멈추고 지나게 된다.

어린이평화체험관은 7세 이하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들어서면 먼저 작은 방이 있다. 그때의 아이들이 사진 속에 있고, 그때 피란을 떠나며 보따리 속에 챙겨 넣었던 색동저고리, 시레이션 깡통 속에 담아 두었던 장난감 등이 방안에 있다. 이제 별빛 반짝이는 짧은 통로를 지나면 환한 놀이공간이 펼쳐진다. 아이들은 고지를 오르듯 미끄럼틀을 오르고, 전우와 대화하듯 무전기에 대고 말을 하고, 폐허를 재건하듯 블록을 쌓는다. 디자이너의 의도와 바람이 아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전투 체험관은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체험하는 공간이다. 우선 훈련소 입소부터 시작한다. 내부는 그때의 마을로 꾸며져 있다. 천장에는 끊어진 왜관 철교가 가로지른다. 사람들은 이 재현된 전장에서 다양한 미션 수행을 통해 당시의 전투에 참가한다. 보초를 서고, 탱크에 오르고, 총을 쏜다. 놀이동산의 게임장 같은 느낌도 있다. 총을 들어본다. 무겁다. 탱크와 적기를 향해 총을 쏜다. 점수가 보인다. 128점. 그만큼의 탱크와 적기를 폭파시킨 걸까. 한동안 팔이 후들거린다. 그때의 총도 저만큼 무거웠을까.

◆5분과 12분의 전투

전투체험관에서는 ‘천평계곡 운명의 결전’이라는 전차전 체험을 할 수 있다. 의자에 앉아 불이 꺼지면 그곳은 전차 안이 된다. 계곡을 오르내리고, 포탄을 피하고, 포탄을 쏘고, 포탄을 맞는다. 그 모든 것을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본다. 단 5분간의 체험이지만 그 여파는 꽤나 길다.

4D입체 영상관에서는 ‘빛바랜 훈장과 주먹밥’이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앳된 얼굴의 학도의용군과 총알과 식량을 날랐던 노무자를 중심으로 12일간 주인이 15번이나 바뀐 328고지의 마지막 전투 이야기다. 12분간의 전투 중 절반 이상이 육탄전이다. 무엇인가가 내 종아리를 치고, 적군과 엉켜 싸우고, 적군의 총칼이 내 눈동자를 향해 온다. 예순이 넘은 듯한 노인 네 분과 함께 전투를 치르고 나오면서 그분들의 안색을 살핀다. 당시 직접 총을 들지 않았더라도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고 회귀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관람하는 아이들에게는 어른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그 또한 쉽지 않을 테고.

밖으로 나가 전망대로 오른다. 산 위에 대형 태극기가 펄럭인다. 아래로 푸른 평화의 광장과 호국 평화탑이 보인다. 탑의 배면에는 꿀벌을 소재로 한 테마 공원이 만들어지고 있다. 눈앞에는 낙동강이 흐른다. 칠곡보와 경부선 철길이 강을 가로지르고 이따금 기차가 지나간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두 번의 전투를 치른 지금 여전히 몸은 후들거리고 팔은 뻐근하다. 어쩌면 그리 많은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빗물이 강물을 때려 대기는 비릿하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30번 국도 성주방향으로 가다 동곡교차로에서 67번 낙동강대로를 타고 약 11㎞ 계속 직진하면 오른쪽에 호국평화기념관이 있다. 왜관IC에서 내려 왜관읍 지나 강변도로로 가도 된다. 관람시간은 10월까지는 오전 9시∼오후 6시, 11월∼2월은 오후 5시까지다. 관람료는 어른 3천원, 중·고등학생 및 군인 2천원, 초등학생 1천원. 단체는 할인된다. 4D입체 영상관 관람료는 성인 3천원, 중·고등학생 및 군인 2천원, 초등학생 2천원이다.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날 및 추석 당일은 휴관한다. ‘낙동강 세계평화 문화 대축전, 낙동강지구 전투 전승행사’는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호국평화기념관 일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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