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나인스 라이프·파리 투 마르세유: 2주간의 여행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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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8   |  발행일 2017-09-08 제42면   |  수정 2017-09-08
하나 그리고 둘

나인스 라이프
“목숨이 아홉”…소년의 죽음에 관한 진실


20170908

‘나인스 라이프’(감독 알렉산드르 아야)는 꽤 독특한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미스터리에 판타지가 뒤섞여 잔혹 동화를 떠올리게 하는 형국이나 그 안은 아프도록 현실적인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한 소년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지만 그 소년은 지금 코마 상태에 빠져 있음이 밝혀지고, 시점이 여러 번 이동하며 긴장감을 증폭시킨다. 애초에 사건의 전말을 눈치 챈 관객이라도 결말까지 가는 과정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한 장면, 한 장면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장르의 변형과 혼합, 시점의 이동과 다양한 캐릭터 구현 등이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톤 앤 매너 및 내러티브의 전반적 흐름에 남다른 매력이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장르의 변형과 혼합·시점 이동·내러티브 등 눈길
아역 에이든 롱워스와 사라 가돈 등 연기 앙상블



아기 때부터 갖가지 사고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소년, ‘루이’(에이든 롱워스)는 엄마인 ‘나탈리’(사라 가돈)에게 아홉 번째 목숨이 남았으니 그 목숨만큼은 아껴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아홉 살 생일 날, 루이는 별거중인 부모님을 따라 피크닉을 갔다가 절벽에서 떨어지게 되고, 용의자인 아빠 ‘피터’(아론 폴)는 실종되고 만다. 루이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그의 주치의인 ‘파스칼’(제이미 도넌)과 나탈리가 급속히 친해지자, 루이의 필체와 말투를 그대로 닮은 경고장이 두 사람에게 날아온다. 파스칼은 루이가 예전에 상담을 받았던 정신과 의사 ‘페레즈’(올리버 플랫)를 찾아가고, 모든 것이 투명해 보였던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다양한 겹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영화가 궁극적으로 조명하는 것은 한 불행한 가족의 실상이다. 불안정하고 우울한 기질의 엄마와 다혈질의 아빠를 둔 루이는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오줌을 지린다. 부모님의 불화 및 커다란 사고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이 영리한 소년을 공황 장애로 몰고 간 것이다. 사고 이후에는 파스칼과 페레즈의 활약으로 이들 가족에 대한 진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생사의 갈림길에 선 루이의 내면이 이야기 속 이야기처럼 펼쳐진다. 정체를 숨긴 괴물에게 들려주는 루이의 속 이야기는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로, 사건 당일 있었던 일의 실상과 진짜 범인을 쫓는 표층적인 서사 안에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는 루이의 시선, 아이로서 드물게 갖고 있는 냉소적 태도가 판타지 장르의 관습을 빌려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정신병리학적 문제가 아이에게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아이의 삶과 죽음 사이라는 극단적이고 철학적인 상황 안에서 풀어낸 작품으로, 무거운 주제를 일부 동화처럼 처리하면서 무게감을 덜고 대중에게 맞는 적절한 색깔과 톤을 만들어냈다.

말 그대로 벼랑 끝에 몰린 루이의 상처 투성이인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한 아역 배우, 에이든 롱워스가 눈에 띈다. 사라 가돈, 아론 폴 등 쟁쟁한 배우들과의 앙상블도 안정적이다. 곡절 끝에 아홉 번째 기회를 맞은 루이의 한 번뿐인 삶을 응원하면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어른들의 직간접적 폭력 속에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8분)


파리 투 마르세유: 2주간의 여행
아랍계 래퍼-고집불통 아재의 로드 무비


20170908

‘트립 투 이탈리아’ ‘트립 투 잉글랜드’ 시리즈, ‘파리로 가는 길’ 등 유럽의 빼어난 볼거리와 먹거리를 앞세운 영화들이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또 한 편의 로드 무비, ‘파리 투 마르세유: 2주간의 여행’(감독 라시드 드자이다니, 이하 ‘파리 투 마르세유’)이 극장가를 찾았다. 이 작품에도 프랑스 작은 마을들의 정취와 풍광, 문화가 잘 살아있지만 초점은 여행지라는 공간 자체보다는 그곳들을 배경으로 티격태격 하며 동행하는 두 남자의 캐릭터, 그리고 그들의 의식 및 관계 변화에 맞춰져 있다. 대부분의 샷에서 원경보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다든가 핸드 헬드로 거친 느낌을 강조한 촬영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파리 투 마르세유’를 최근 유행하는 여타의 로드 무비들과 차별화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편견·차별의 폐해와 포용에 관한 르포 같은 영화
거친 화면·편집에 두 남자의 티격태격 케미 재미



‘파훅’(사덱)은 랩으로 파리를 평정한 실력 있는 래퍼다. 그러나 2주 후에 마르세유에서 있을 콘서트 무대를 앞두고 라이벌들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되자 그는 자신의 프로듀서이자 친구인 ‘빌랄’(니콜라스 마레투)이 시키는 대로 그의 아버지, ‘세르주’(제라르 디파르디유)를 찾아간다. 세르주는 그가 사랑하는 18세기 화가, ‘클로드 베르네’의 작품에 등장하는 바닷가를 순례하며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고, 파훅은 그의 운전기사 노릇을 해주며 안전하게 몸을 숨기기로 한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고집불통인데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대는 아버지뻘의 세르주와 동행하기는 쉽지 않다.

아랍계 래퍼와 중년 백인 남성 사이의 크고 작은 말다툼은 현재 프랑스 사회가 겪고 있는 여러 갈등을 대유한다. 인종 및 세대 갈등, 종교와 문화 차이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파훅을 향한 세르주의 험담과 인신공격은 사실 독일계 노동자로서 평생 힘들게 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소외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풀이와 같다. 파훅에게도 프랑스인이지만 아랍계라는 이유로 대우받지 못하며 살아온 울분이 쌓여 있다. 서로 말다툼 하는 것 이외에도 그들은 각자 그림을 그리고 랩을 하면서 애환을 삭인다. 그리고 예정된 대로 결정적인 순간에 화해하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화면이나 편집은 다큐멘터리처럼 거칠지만 시종일관 유쾌한 대사가 살아있고, 파훅과 세르주의 호흡을 지켜보는 재미, 이들의 그림과 랩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편견과 차별의 폐해, 동시대가 요구하는 관용과 포용의 방법론에 대한 담백한 르포 같은 영화다.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94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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