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의 뮤직톡톡] 조선 최초의 피아노 소리가 나던 날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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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8   |  발행일 2017-09-08 제39면   |  수정 2018-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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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진 나루터로 옮길 당시의 피아노 운반대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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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피아노에 대한 잡다한 생각들을 열거한 끝자락에 언제 고려장 될지 모르는 천덕꾸러기 ‘가정용 피아노’가 조선 후기 어떤 경로와 에피소드를 통해 대구에 입성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다며 글을 마쳤다. 조선 후기 미국 장로교 선교사인 사이드 보텀(한국명 사보담)은 1899년 11월23일부터 대구에서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3월26일에 화원 사문진 선착장에 이삿짐과 함께 피아노가 도착한다. 사문진 나루터는 북쪽으론 안동, 남으로 부산의 구포를 연결 짓는 중간 기착지이자 금호강과도 연결된 내륙지역을 연결하는 하천교통의 요충지다. 15세기 후반까지 왜(倭)와 무역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왜의 식량과 무기 등의 물자를 내륙으로 옮기는, 즉 바다와 내륙을 잇는 중요한 물줄기이기도 했다.

그러한 이유로 의병들은 적의 보급로인 이곳을 기습 공격함으로써 왜군의 중요 물자인 식량과 무기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고 의병대장인 홍의장군 곽재우가 적에게 기울어진 승기를 다시 우리에게로 되돌리게 하는 분수령을 만들었다. 이렇듯 그 당시에는 육로로 물류를 운송하는 것보다 수로를 통한 이동이 훨씬 보편화되었다.

26일에 도착한 피아노는 28일 오후가 되어서야 현재의 약전 골목에 도착하게 된다. 어떤 교통수단으로 어떻게 운송이 되었는지 알아보기 전에 간단한 수식을 써 볼까 한다.

20+1+10=31

짐작하겠지만 피아노를 운반한 짐꾼들의 수이다. 나루터에서 대구 남성로까지 거리는 얼마나 될까. 당시 사보담의 부인이 부모한테 보낸 편지글을 보면 ‘약 10마일을 사흘 동안 운송하였다’고 적혀있다. 10마일은 16㎞, 즉 40리를 이동한 것이다.

26일 아침 일찍 짐꾼 20명이 식사를 하고 40리를 걸어 사문진에 도착한다. 가지고 온 밧줄과 막대 등으로 마치 상여를 매듯 이동할 수 있도록 운반준비를 마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튿날 짐꾼 한 명을 더 추가해 아침 일찍 대구로 향했다. 어릴 적 수십 명의 짐꾼들이 상여를 메고 산으로 올라가는 걸 볼 때도 참 힘들어 보였는데, 그보다 훨씬 무거운(당시의 피아노는 지금보다 더 무겁다), 사람도 아니고 뭔지도 모르는 무거운 나무상자를 들고 나르려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논두렁 밭두렁, 비탈길, 오르막길, 진흙길, 자갈길….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을 오르는 장면과 오버랩됐다고 하면 과도한 상상일까.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아니라 평범한 짐꾼들이라 자주 쉬게 되고 서로 다투기도 하고 여기저기 불평이 터져 나왔다. 약전골목을 5㎞ 남겨두고 무려 2박을 한다.

셋째 날에는 짐꾼 10명을 더해 모두 31명이 우여곡절 끝에 선교사 부부의 처소 앞마당에 도착한다. 막상 도착해 보니 집안의 출입문이 작아 피아노를 들여 놓을 수 없었다. 문을 뜯어내 간신히 거실로 옮겼다. 이로써 대장정 끝!

그러나 미국에서 대구읍성까지의 이동 과정에서 피아노는 바로 연주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피아노 조율과 수리를 담당하는 이도 없었으니 부부는 순간 절망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제자리를 잡게끔 건반을 만지고 여기저기 손을 봤다. 드디어 28일 오후 2시30분쯤 피아노가 첫 음률을 토해낸다. 아마 찬송가를 연주했을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구경나온 사람들은 대구에서, 아니 조선에서 최초로 피아노 소리를 들은 관객이 된다. 몇 달 전 방천시장을 걷다가 비닐을 씌워놓은 갈색 가정용 피아노 한 대를 보았다. 봄철 무슨 행사에 동원된 피아노인 모양인데 어찌된 셈인지 아직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몇 달 전에 본 그 피아노는 며칠전에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냥 ‘거기에 있는 피아노’였다. 야외 조각품도 아니고…. 보관이 아니라 방치된 것 같았다. 장마철에도 그 자리에 있었으니 이미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씁쓸했다.

손태룡 음악문헌학회 대표의 연구로 밝혀진 대구로 들여온 한국 최초의 피아노 덕분에 매년 사문진 나루터에서 ‘100대 피아노 콘서트’가 펼쳐지고 있다. 나는 100대 피아노를 보면서 ‘와 대단하다’라는 생각에 앞서 ‘저 피아노들은 다 어디로 돌아갈까’란 걱정이 먼저 스쳐간다. 재즈드러머 sorikong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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