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알바 뛰는 김 사장님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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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7   |  발행일 2017-09-07 제31면   |  수정 2017-09-07
[영남타워] 알바 뛰는 김 사장님

“시급 1만원의 임금을 줄 수 없는 사장님이라면 차라리 회사문을 닫고 시급 1만원의 노동자가 되는 편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더 나을 수 있다.”

지난 칼럼 ‘갓뚜기를 대구로’를 읽은 독자들이 발끈했다는 대목이다. 높은 임차료에 낮은 수익률, 온 가족이 매달려 하루 장사를 근근이 이어가는 영세 자영업주에겐 억장 무너지는 소리일 수도 있다. 사장님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월급 올려 달라는 것이라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사장님 나빠요’라고만 할 수 없는 것 또한 한국 경제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저임금이 1만원은 되어야 한다는 나의 믿음은 변함이 없다. 시급 1만원을 못 줘서 김 사장님이 알바를 뛰면 또 어떤가. 알바 시급으로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만 있다면 말이다.

수당을 포함해 100만원이 겨우 넘는 월급을 받는 비정규직이 널려 있고,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는 아파트 경비원의 월급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임금근로자의 17.4%, 다섯 명 중 한 명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급으로 살고 있다. 최저임금 영향률, 즉 현재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에 미달돼 향후 임금인상이 필요한 근로자의 비율이 대구는 36.8%로 전국 평균 23.6%를 크게 웃돈다. 지역 근로자들의 삶은 이처럼 특별히 더 열악하다.

열심히 일하고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가난은 일상적이면서도 영구적인 현상이 되어 버린다. 가난 때문에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청년이 있고, 가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대학생이 있고, 가난 때문에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무도 몰래 혼자 죽는 사람이 있다. 가난한 사람은 도처에 넘쳐나는데, 정작 우리는 아무도 가난하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가난이란 모름지기 부끄럽고 죄스러운 어떤 것. 그리하여 가난을 숨기려 멋진 옷을 걸치고, 가난을 지우며 비싼 음식을 먹는다. 최선을 다해 나의 가난함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난에 대한 이같은 태도와 정신은 경쟁사회의 산물이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치환되는 시대, 경쟁에서 뒤처짐은 곧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짐을 의미하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이유는 개인의 무능력과 노력 부족이다. 가난한 이들은 못난 데다 열정이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 ‘루저’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혐오와 경멸, 차별과 격리의 합리적인 근거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난의 원인을 개인으로 돌릴 때, 그 전제는 재화가 제한되어 있고 경쟁의 구조가 공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평한 운동장, 같은 출발선, 공정한 규칙, 정확한 판정 등의 용어가 적용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선에서 최선을 다해 달리기를 한 결과가 부의 분배로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가설이 적용된다 하더라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여지는 남는다. 패자에 대한 배려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부의 축적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불가능하다. 부의 분배가 사회 전체의 책임인 이유다.

이런 까닭에 최저임금 인상은 삶의 가치, 노동의 의미, 분배의 정의, 경제 성장 등에 대한 근본적 인식 변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임금을 인상해 경기를 부양시킨다는 주장 역시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현재와 같은 구조에선 저소득 임금노동자들의 구매력이란 형편없는 수준이다. 임금을 인상시켜야 노동자들의 구매력이 향상돼 경제의 선순환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틈 날 때마다 기업이 잘 돼야 서민경제도 덩달아 살아난다는 낙수효과를 강조하며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해 왔다. 노동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지고 삶의 질은 갈수록 나빠질 수밖에 없다.

“온 힘을 다해 노을이 지고 밤이 내리듯 온 힘을 다해 살아도 가난은 반복된다. 가난의 힘은 그래도 살아가는 것”이라는 시인의 탄식이 그저 한낱 시구에 불과할 수 있기를, ‘1만원의 행복’에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다.

이은경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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