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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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4   |  발행일 2017-09-04 제31면   |  수정 2017-09-04
[월요칼럼]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손쉽게 원숭이를 잡는 방법이 있다. 손을 펴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입구가 좁은 항아리나 통나무 구멍 속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달콤한 과일·견과류 등 먹이를 넣어둔다. 맛있는 냄새를 맡은 원숭이는 이리저리 살피다 유혹에 못 이겨 항아리 속으로 냉큼 손을 집어넣어 한 손 가득 먹이를 움켜쥔다. 하지만 먹이를 잔뜩 쥔 손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빠지지 않고 저만치서 사냥꾼이 다가와도 끝내 먹이를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공짜로 얻은 먹이를 잃고 싶지 않은 욕망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결국 원주민이 목덜미를 낚아채는 그 순간까지 원숭이는 손을 빼지 못하고 쩔쩔매다 잡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지금은 경제학 용어처럼 쓰이는 ‘공짜점심(free lunch)’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 서부개척시대 선술집과 레스토랑이 손님을 끌기 위해 일정량 이상의 술을 마시는 손님들에게 점심을 덤으로 제공하던 관습에서 유래했다. 술도 마시고 점심도 즐길 수 있다는 소문에 손님이 몰리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바보가 아닌 이상 공짜로 먹은 점심값까지 술값에 포함돼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그 점심은 주로 짭짤한 스낵류여서 목이 말라 술을 더 찾게 되니 주인은 일거양득이다. 여기서 나온 격언이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다’는 말이다. 즉 내가 먹은 점심이 당장은 공짜라도 나를 포함해 누군가 어떤 방식으로든 미래에 대가를 치르는 경우를 이를 때 즐겨 쓴다. 경제용어로 풀이하면 기회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없다는 뜻이다.

공짜점심의 덫에 걸리기 쉬운 것은 나라도 마찬가지다. 달콤한 복지정책으로 만찬을 즐기다 경제가 파탄 난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원유 수출만 믿고 흥청망청 퍼주기 무상복지를 하다 국민이 나라 밖으로 대탈출하는 처지가 된 남미 베네수엘라도 그중 하나다. 차베스정부(1999~2013)는 국영 석유회사가 벌어들인 돈으로 무상교육·무상의료를 펼쳤지만 유가하락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리스도 부정부패와 무상복지로 위기를 맞았다. 최저임금 40% 인상, 연금지급 확대, 국가의료서비스제도 도입 등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했다. 결과는 뻔하다. 2010년 구제금융 신청이후 국가산업인 항구 철도시설과 국영가스회사는 물론 해변의 고대 유적까지 외국에 팔아넘기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갓 출범한 문재인정부도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고 무상복지 정책을 쏟아내면서 과속 경고음이 곳곳에서 울린다. 당장 새 정부 100대 국정과제 이행에 필요한 재원이 5년간 ‘178조원+α’로 추산된다.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신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확대, 장애인연금 인상 등 5대 복지정책에 드는 돈만 5년간 54조1천400억원이다. 문재인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에도 5년간 30조6천억원이 들어간다.

복지확대로 돈 쓸 곳은 널려있지만 나라 곳간은 화수분이 아니다. 정부는 보편적인 증세 없이 대기업·초고소득자 핀셋증세와 세출 구조조정 등으로 재원을 충당한다는 방침이지만 영 미덥지가 않다. 이미 국가부채에도 빨간불이 켜진 상태가 아닌가. 더욱이 한번 설계된 복지는 다시 되돌리기 어려운 데다 급속한 고령화로 앞으로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기초연금만 하더라도 내년 수급자는 517만 명이지만 10년 뒤인 2027년에는 81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실에서 복지확대는 옳은 방향이다. 그렇지만 현세대가 공짜점심을 즐기고 미래세대가 빚잔치를 해서는 곤란하다. 대한민국이 고부담-고복지로 갈 것인지 아니면 중부담-중복지 또는 저부담-저복지로 갈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공론화 기구를 만들어서라도 국민적 대타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지금처럼 보편복지를 지향하면서 조세는 선별적으로 해서는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이런 시구가 나온다. ‘먼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우리는 과연 어느 길로 갈 것인가.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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