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건정치칼럼] ‘박근혜 출당’은 급한 일일까

  • 송국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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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04   |  발행일 2017-09-04 제30면   |  수정 2017-09-04
추석민심 노린 친박정리론
洪대표의 다목적 정치포석
보수궤멸 책임도 도리지만
1심정도는 보는 것도 도리
셀프청산은 전체보수의 몫
[송국건정치칼럼] ‘박근혜 출당’은 급한 일일까

자유한국당에서 ‘박근혜 출당론’ ‘친박계 청산론’이 계파 분쟁의 화약고가 됐다. 이 문제는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자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에서 지난달 16일 화두를 꺼낸 뒤 공론화 단계로 접어들었다. 홍 대표는 당시 “국정농단에 관여했던 핵심 친박과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한국 보수진영을 궤멸시킨 책임을 묻는 게 도리”(영남일보 8월18일자 인터뷰)라고 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 정리를 후순위 과제로 미뤘던 당 혁신위원회(위원장 류석춘)도 부쩍 목소리를 낸다. 홍준표 지도부와 류석춘 혁신위가 호흡을 맞추는 분위기다. 최근엔 추석 연휴(9월30일~10월9일) 이전, 더 앞당겨서 이번 주 중에 결론을 낼 거란 말도 나온다. 장기간 지속되는 명절 밥상머리 여론을 겨냥한 계획이다.

핵심은 인위적 청산이 가능한지, 홍 대표의 정치적 노림수가 무엇인지, 그 길이 보수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다. 보수 내부에서의 상징적인 과거청산은 ‘박근혜 출당’이다. 여전히 한국당 당원인 박 전 대통령의 당적을 박탈해 선긋기를 하자는 주장이다. 스스로 탈당할 생각이 없는 걸로 보이니 당헌·당규에 따라 제명이나 탈당권유 조치를 내리면 가능하다. 실질적 과거청산인 ‘친박계 국회의원 징계’는 절차상 조금 복잡하지만 당내에 공감대만 형성되면 이 역시 속전속결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 경우 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107명 중 친박계가 60~70명에 이르므로 ‘선별’이 관건이다. 현재 친박계 안에선 초·재선급을 중심으로 ‘일부 핵심’은 당을 떠나는 게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들은 보수정당에 남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도 묻어 있다. 정치적 면죄부를 받을 다수의 친박계가 당내 과거청산의 동력이 되는 역설적 현상도 예상할 수 있다.

홍 대표의 머릿속에선 벌써 그런 계산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는 5·9 대선 때 “큰 선거에선 지게작대기도 필요하다”며 친박계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에 대한 인명진 비대위의 당원권 정지 징계를 풀어줬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 핵심을 정리해야 할 필요성이 안팎에서 생겼다. 당내에선 친박계를 갈라쳐야 홍준표 체제에 힘이 실린다. 또 친박 핵심이 떠나줘야 외부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여 ‘친홍(親洪)계’의 외연확장이 가능하다. 외부적으론 내년 6월 지방선거 대비 차원에서 바른정당과의 연대, 나아가 통합을 위한 포석 깔기다. 존립의 위기를 느끼기는 마찬가지인 바른정당 의원들 중에선 한국당이 명분만 찾아주면 슬그머니 재결합할 수 있다는 말들을 사석에서 많이 한다. 결국 홍 대표는 짧게는 지방선거 플랜, 길게는 차기 대권 로드맵을 위해 ‘박근혜 색채 지우기’에 본격 나선 셈이다.

보수진영의 셀프 청산(혹은 정리)은 홍 대표나 한국당, 또는 바른정당에만 닥친 일이 아니다. 여전히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는 물론이고, 보수 정치권의 변화를 유심히 지켜보는 국민에게도 큰 관심사다. 수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박 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도 또 다른 관점에서 이를 지켜본다. 섣불리 과거청산에 나섰다가는 얼마 남지 않은 집토끼 중에서 또 일부가 뛰쳐나갈 수도 있다. 한국당의 친박 청산은 이미 실기(失機)했다. 그렇다면 더 숙성시키는 방법도 있다. 추석 밥상 메뉴에 ‘박근혜 정리’라는 결론을 올리지 않고, 이 상태로 여론을 떠볼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추석 연휴 직후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1심 선고가 나온다. 그때 어떤 여론이 형성될지 기다려 보는 게 도리 아닐까. 급할수록 돌아갈 때다.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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