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때로는 호사를 누려라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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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31   |  발행일 2017-08-31 제31면   |  수정 2017-08-31
[영남타워] 때로는 호사를 누려라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몇 년 전만 해도 남편과 가끔 커피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휴일에 잠시 시간이 나면 근사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싶어하는 나의 마음을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렇게 작은 커피 한 잔에 4천~5천원이라니….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면 깜짝 놀라실 거야”라며 바깥 출입을 잘 안 하시는 어머니를 앞세워 양에 비해 턱없이 비싼 커피와 카페를 은근히 비난했다. 여기에는 분명 카페에서 쓸데없이 돈 써가며 사치를 부린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었으리라.

다른 사람들-특히 시어머니처럼 시골에 오래 사셨고 외부 음식을 잘 안드시는 분들-이 보면 이해를 못할 수 있지만 나는 출근해 컴퓨터의 e메일을 확인하면서 커피를 즐기는 시간이 가장 여유롭고 행복하다. 새벽부터 일어나 남편과 아이들 아침밥상을 차려주고 회사에 나오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은 정신이 거의 없다. 때때로 속으로 ‘미친 사람 같네’라고 푸념하면서 좁은 집안을 바쁘게 빙빙 돌았다. 그래서 난 아예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나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고 소화도 안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휴일에 아이가 집에 없는 틈에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는 것으로 보상받았다. 이런 것을 남편은 이해를 잘 못하는 듯했다. (최근에는 오랜 교육 덕분에 남편도 이런 내 생활패턴을 이해하고 자신도 그런 시간을 즐기는 듯하다.)

어찌보면 남편의 말이 맞다. 커피 한 잔의 원가가 몇 백원밖에 안한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알려지면서 이런 커피를 마시면 바가지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커피는 단순히 맛으로 먹는 음료가 아니다. 맛 외에 커피가 주는 또다른 여유로움과 행복이 있다. 카페에서 마실 때는 카페만이 가지는 가치도 있다. 쫓기던 마음, 불안했던 마음을 근사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즉 4천~5천원으로 다스릴 수 있다면 이것은 결코 그 값어치를 못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람들은 흔히 절약을 미덕으로 생각하고 사치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프랑스의 유명한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장 카스타레드는 ‘사치와 문명’이란 책에서 “사치는 유용성에 앞서고 인간적이며 필수적이며 영원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치를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류문명 발전의 견인차라고 치켜세웠다. 사회학자 에릭 호퍼도 ‘인간의 조건’이란 책에서 인간은 사치를 사랑하는 동물이라며 사치를 사회 발전의 한 요소로 봤다. 그는 “인간에게서 놀이와 공상, 사치를 빼앗으면 그 인간은 겨우 근근이 살아갈 정도의 활력만 남아있는 우둔하고 태만한 피조물이 된다”고 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사치를 맹목적으로 좇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주변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사치를 즐기라는 의미다. 또 늘 그럴 수는 없지만 때때로 호사를 누리는 것이 스스로를 위로하고 에너지를 주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커피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었지만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작은 사치로 우리의 생활을 풍성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중 가장 가치있는 사치로 나는 문화예술을 꼽고 싶다. 모든 문화는 처음 나올 때는 사치였다고 한다. 누군가 더 편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만들게 된 것이 결국 문화가 된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일상문화의 상당수는 과거에는 아무나 하지 못하는 사치였다. 어찌보면 비판 받을 수 있는 부분이었겠지만 문화예술의 소비를 통한 작은 사치는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 긍정적인 측면이 더 컸다.

아직 우리 사회에는 예술문화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가 즐기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최근 생활문화 활성화 정책과 국민의 의식수준 향상 등으로 인해 무료나 소액으로 수준 높은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방법도 많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4년부터 생활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문화가 있는 날’이나 대구시가 주최하고 있는 ‘대구생활문화제’ 등이 좋은 예다. 마음만 있다면 경제적 부담 없이 사치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작은 사치의 진정한 의미만 알고 있다면 말이다.
김수영 주말섹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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