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대구의 혁신아이콘이 되다 .7] 지역행정 중심 논공읍

  • 임훈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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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31   |  발행일 2017-08-31 제13면   |  수정 2017-10-26
달성군청, 논공읍 이전…행정효율·주민편익 두 토끼 잡은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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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군 논공읍 금포리에 자리한 달성군청 전경. 달성군 청사는 2005년 남구 대명동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으며, 논공읍은 지역 행정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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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군청 옥상에서 내려다본 논공읍 전경. 논공읍은 군내 3개 읍 중 하나로 넓은 농경지를 비롯해 행정·주거·산업이 혼재한 지역이다.

달성군 논공읍은 군내 3개 읍 중 하나로 넓은 농경지를 비롯해 행정·주거·산업이 혼재한 지역이다. 달성1차산업단지 등 대규모 산업시설이 위치해 지역 경제를 견인해 왔으며, 2005년 달성군청 이전으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군청 이전으로 지역의 행정중심지가 된 논공읍은 달성군 발전과 지역민 화합의 상징적 장소로 추가적인 발전가능성이 점쳐지는 지역이다. 시리즈 7편에서는 논공읍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리잡은 달성군청의 이전 과정을 살펴본다.

2005년 5월16일 이전 마무리
부지 4만9천㎡·지상 9층 규모
대명동 시대보다 넓고 편리해
주민들 저렴하게 예식장 이용
대강당선 인형극·뮤지컬 공연
건축초기 호화청사논란 잠재워


#1. 달성군 발전의 구심점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에 위치한 달성군청은 달성군 발전을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달성군은 2005년, 37년 간의 대명동 청사 시대를 접고, 논공읍에 안착하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현재 달성군청은 지역 행정의 중심지이자 지역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군청 주변은 깔끔하면서도 시원한 풍광을 자랑한다. 한때 ‘호화청사’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행정 효율성 증대와 주민편익 증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사그라졌다. 군청은 4만9천926㎡ 부지에 2만4천406㎡의 건축연면적을 지니고 있으며, 지하 1층 지상 9층의 초현대식 건물이다.

달성군청은 대명동 시절보다 확연히 넓어지고 편리해졌다. 청사는 행정청사동, 의회청사동, 문화복지동으로 구성돼 있으며, 주민편의시설을 대폭 확충해 민원인들을 위한 최상의 환경을 조성했다. 특히 문화복지동 내부에는 예식장과 대강당 등 주민을 위한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예식장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주민들이 예식을 치를 수 있으며, 군청 앞 공원에서 웨딩촬영을 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강당 역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군내 각종 행사는 물론 지역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이나 뮤지컬 공연 등이 대강당에서 이뤄지고 있다. 청사 외부도 알차다. 청사 주변으로는 분수가 있는 진입광장과 잔디마당, 비슬마당을 비롯해 옥상정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500여대 규모의 주차장을 마련해 양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 대구의 성장과 맞물린 달성군청 이전

달성군청 이전 과정은 대구의 성장 역사와 맞물려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뤄졌을 때 달성군은 대구부와 함께 경북도에 속한 한 지역이었다. 당시 달성군의 행정구역은 대구부를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었다. 달성군은 수성·달서·공산면 등 지금의 대구도심 대부분을 포함한 16개 면으로 구성돼 있었다. 2017년 현재 행정구역 기준으로 보면 사실상 대구 중구를 제외한 대구지역 대부분이 달성군이었다.

이후 대구가 팽창을 거듭하고 지방행정체계 역시 변화를 거듭하면서 달성군의 영역은 점차 축소되기 시작한다. 1930년대 들어 달성군의 3개면이 대구부에 편입되면서 달성군의 관할지역은 16개 면에서 13개 면으로 줄어든다. 광복 이후부터 고도 경제성장 시기에도 대구의 팽창은 이어진다. 1958년 동촌·공산·가창면을 비롯해 월배·성서의 5개면이 대구시로 편입되면서 달성군의 관할지역은 8개 면으로 줄었다.

달성군은 1963년 공산·성서면 등 4개 면을 환원받아 12개 면을 관할하게 됐지만, 198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다시 관할구역의 축소를 겪는다. 달성군은 1979년 월배면, 그리고 1980년 성서면이 읍으로 승격돼 2개 읍과 10개 면을 관할하게 됐지만, 1981년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성서·월배읍과 공산면이 대구시에 편입됐다. 이후 달성군은 9개 면을 관할하게 됐고 2017년 현재 3개 읍, 6개 면 체제를 갖추게 된다.

논공읍에 달성군청이 들어서기 전까지 군 청사는 대구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달성군청은 1967년까지 대구시 중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자리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후 남구 대명동으로 달성군청을 이전했지만, 달성군청은 현재의 신청사 이전까지 단 한 번도 관할구역 내에 청사를 둔 적이 없었다. 대명동 또한 원래 달성군에 속해 있었지만,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구도심권에 편입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달성군은 늘 행정의 중심지와 관할지역이 일치하지 않는 기현상을 겪어야 했다. 군내에 군청이 자리하지 않자 군청의 행정중심 기능이 약화되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관할구역 밖에 군 청사가 위치한 곳이 달성군이었기에 정통성 문제도 대두됐다. 군민들 또한 교통불편을 겪으며 대구 도심을 드나들어야 했다. 좁은 청사 탓에 공무원들도 고초를 겪었다. 사무공간이 좁아 책상 앞에서 의자조차 마음대로 돌릴 수 없을 지경이었고, 기본적인 전산장비를 놓아둘 공간마저 부족했다. 특히 대명동 청사 시절 주차공간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였다. 1997년 이전까지는 지하철도 없었고, 군청을 드나드는 차량이 늘어나면서 만성적인 주차난에 시달렸다. 군청에 주차하지 못한 차량들이 주변 도로에 주차하면서 인근 주민들의 민원도 빗발쳤다.


#3. 지역행정 중심지로 거듭나다

2000년대 들어 달성군청 이전 움직임이 가시화된다. 지방자치제도가 자리잡으면서 지역 균형발전과 행정능률 향상에 대한 요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달성군은 지역의 한 대학에 군청이전 용역을 의뢰하고, 신청사 후보지 4곳을 선정한다. 논공·옥포·현풍·유가지역이 신청사 후보지로 선정됐지만, 옥포의 경우 토지매입 문제로 청사 이전이 무산된다. 지리적으로는 옥포면이 달성군의 중심지였지만, 토지보상 등 현실적 문제와 종합적인 지리·발전가능성을 고려해 논공읍이 달성군 신청사 부지로 결정됐다.

2001년 초 군의회에서 군청 이전에 대한 승인이 나면서 이전사업은 본격화된다. 2002년 7월, 군청이전 전담기구인 ‘군청이전 추진반’이 구성되고 청사이전은 급물살을 탄다. 물론 이후의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시 군청이전 용역 결과를 두고 건물 규모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일부 제기됐기 때문이다. 당시 사회분위기는 IMF 경제위기가 해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몇몇 언론들은 달성군 신청사 건립을 두고 질타하는 식의 기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달성군은 결국 용역 원안대로 사업을 추진한다. 군청 확장이전의 발목을 잡았던 정부의 ‘기초자치단체 청사 규모 가이드라인’이 달성군청 이전을 즈음해 사라졌고, 청사 규모를 확정하기 위한 달성군 측의 면밀한 검토도 이뤄졌다. 달성군은 기장군청, 용인시청, 화성시청 등 타 지자체의 건립비를 참고해 신청사 건립비용을 책정하는 등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해 군청 이전에 힘을 실었다.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2003년 3월28일 달성군 신청사 기공식이 열린다. 2005년 4월9일 준공을 완료한 달성군청 신청사는 2005년 5월16일부터 논공읍 금포리로 청사 이전을 완료하고 행정서비스를 시작한다. 군청이전 추진반에 몸담았던 달성군의 한 관계자는 “달성군청의 논공읍 이전 후 군민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의 정체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 기획:달성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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