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의 寶庫-호미반도&영일만을 가다 .8] 기계면 성계리 고인돌마을

  • 임훈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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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9   |  발행일 2017-08-29 제13면   |  수정 2017-08-29
선사시대로 가는 마을…마당에 담장에 운석처럼 박힌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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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북구 기계면 성계리의 고인돌. 성계리 고인돌은 주민 생활공간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방식 고인돌로 지석이 아예 없거나 짧은 것이 특징이다. 최임식댁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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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당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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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댁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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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댁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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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곡댁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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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계댁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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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계리 곳곳의 담벼락에는 고인돌과 원시인을 비롯해 선사시대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벽화는 미술 전공 학생들의 재능기부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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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당공원에는 관광객을 위한 포토존과 고인돌 조성 모습이 재현돼 있다.

포항시 북구 기계면 성계리에는 옛 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포항시 전역에서 고인돌과 암각화 등 고대 거석문화(巨石文化) 유적이 발견되지만, 특히 성계리가 위치한 기계면 일원에 수많은 고인돌이 분포돼 있다. 수천년 전 기계면에 자리 잡은 특정 세력이 높은 농업생산력과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고인돌을 세웠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스토리의 보고 호미반도&영일만을 가다’ 8편은 선사인의 발자취와 현대 농촌의 삶이 공존하는 성계리 고인돌마을에 대한 이야기다.

지석 없거나 짧은 남방식 고인돌
가옥 안주인 택호 따서 이름 붙여
마을남쪽 칠성재에 거대 고인돌 5기
가장 큰 건 무게 200t…영남 최대
가로 4.8m·세로 4.7m·높이 3.7m
포항 일원 모두 335기 흩어져 있어
성계리 위치한 기계면 114기 보유


#1. 남방식 고인돌이 자리한 마을

성계리(1리)는 ‘고인돌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마을 주변에 수십기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성계리는 마을 내부에만 7기의 고인돌이 자리해 ‘칠성마을’로도 불린다. 고인돌을 구경하기 위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이 점점 늘고 있으며, 청동기 시대의 역사 공부를 위해 성계리를 찾는 학생도 많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노란 담벼락 위에 그려진 지도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지도에는 마을 곳곳에 있는 고인돌의 위치가 자세히 적혀 있다. 지도의 안내에 따라 마을 입구에서 가까운 솔뫼당 공원으로 향한다. 솔뫼당공원은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5기의 고인돌이 있다. 공원에는 소형 자동차만 한 크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납작한 원반 모양의 고인돌에서부터 각이 날카롭게 선 고인돌까지 그 모습이 다양하다.

성계리의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북방식 고인돌이 아니다. 북방식 고인돌은 기둥 역할을 하는 지석이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지만, 성계리 고인돌은 지석이 아예 없거나 짧은 남방식 고인돌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탁자식이나 바둑판식 고인돌로도 불린다.

공원의 고인돌 또한 지석이 보이지 않아 얼핏 보면 그냥 바위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수천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사람이 가공한 흔적이 바위 곳곳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바위를 깬 자국이 바위 곳곳에 새겨져 있으며, 일부 고인돌에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성혈(구멍)이 뚫려 있다. 고인돌의 재질 또한 공원 주변의 것들과 다르다. 성계리 일원의 고인돌은 마을 인근 고개인 칠성재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칠성재 인근의 암석 재질이 마을 고인돌의 것과 같기 때문이다.

공원은 마을 주민과 관광객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다. 2개의 정자와 소나무 그늘이 있어 쉬어가기 좋고, 지대가 높은 편이어서 주변 풍광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성계리 앞으로는 너른 들이 펼쳐져 있고, 들 앞으로는 기계천이 유유히 흐른다. 공원 한쪽에는 관광객을 위한 포토존도 자리하고 있다. 원시인들이 그려진 포토존 앞에는 옛 사람들이 고인돌을 옮겼을 법한 도구를 재현해 놓았다. 둥근 통나무 여러 개 위에 바위가 얹혀 있다. 거대한 바위를 인력으로만 옮겨야 했을 선사인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듯하다.

#2. 선사인의 발자취를 엿보다

솔뫼당공원을 둘러본 후 마을 내부의 고인돌들을 살펴봤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성계리 고인돌은 주민 생활공간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담벼락 사이에 위치한 고인돌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고인돌은 마당 한쪽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대문 옆에서 문지기 역할을 하는 고인돌, 담벼락 아래 호박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고인돌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고인돌이 자리한 가옥 안주인의 택호(宅號)를 따서 고인돌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성계리 고인돌은 각각 양동댁, 주산댁, 봉계댁과 같은 친근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성계리 곳곳에 그려진 벽화도 눈에 띈다. 마을의 벽에는 원시인과 매머드를 비롯해 동굴과 고인돌 등 선사시대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벽화는 미술 전공 학생들의 재능기부로 완성됐다.

고인돌이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모습은 마치 운석이 떨어진 듯한 상상을 일으킬 정도로 낯설지만, 푸근한 농촌 풍경과 잘 어우러져 금세 익숙해진다. 마을 내부에 자리한 고인돌의 모양도 가지각색이다. 정사각형이나 넙적한 모양의 고인돌 등 정형성이 없는 남방식 고인돌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마을 남쪽으로 가면 칠성재 탐방로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칠성재에는 5기의 거대한 고인돌이 있는데 기계면 성계리에서 경주시 안강읍 노당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자리하고 있다. 탐방로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20여분간 500여m를 걸으면 칠성재 고인돌을 볼 수 있다.

특히 칠성재 1호 고인돌은 영남 최대규모의 고인돌이다. 고인돌의 규모는 가로 4.8m, 세로 4.7m, 높이 3.7m로 그 무게만 200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굄돌 3개가 커다란 상석을 받치고 있는 모양이다. 성계리 주민들은 이 고인돌을 ‘칠성바위’로 부르며 아끼고 있다. 칠성재에는 5기의 큰 고인돌 외에도 작은 고인돌이 여럿 자리하고 있다.

#3. 거석문화의 고장 포항

고인돌은 아주 오래 전 지역 유력자의 무덤이다. 자연석을 이용해 지상 또는 지하에 매장시설을 만든 후 지상에 큰 덮개돌을 올렸다. 학계는 고인돌의 조성 시기를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로 보고 있다. 무거운 고인돌을 옮기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했다. 노동력 동원은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집단에 노동력과 관련된 지도자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인돌을 통해 선사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도 있다. 선사시대 장송의례나 기념물에 대한 숭배의식 등을 추정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고인돌이기 때문이다.

포항은 영남지역에서도 대규모 거석문화 유적이 분포한 고장이다. 포항시 일원에만 335기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으며, 성계리가 위치한 기계면 일원에만 114기의 고인돌이 있다. 이는 포항 전체 고인돌의 3분의 1에 해당되는 규모다.

기계면 일원의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포항 지역에 많은 사람이 살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대규모 고인돌군이 자리한 성계리의 경우 기계천의 물과 기름진 토지 덕분에 선사시대에도 농업이 발전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시 높은 농업생산력을 기반으로 일어선 특정 세력이 성계리를 중심으로 기계면 일원을 지배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진규 포항시 학예연구사는 “고인돌의 존재로 미뤄 큰 영향력을 지닌 지배세력이 기계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청동기 시대 당시 기계면을 지배한 세력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인근 경주시 안강읍 일원에 음즙벌국(音汁伐國)이라는 읍락국가가 있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로 전해진다. 기계면에도 이와 비슷한 소국(小國)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글=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여/행/정/보= 익산포항고속도로(대구~포항) 서포항IC에서 빠져나와 기계천 성학교나 달성교를 건너면 성계리(1리)에 도착할 수 있다. 마을 입구에 좁은 공터가 있어 주차가 가능하지만,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마을에는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조용히 마을을 둘러보는 것을 권하며, 가옥 내부를 함부로 촬영하는 행동도 자제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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