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더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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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5   |  발행일 2017-08-25 제42면   |  수정 2017-08-25
하나 그리고 둘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
‘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사진작가’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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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로맨틱한 사진작가’라는 BBC의 평가처럼,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에는 낭만이 흐른다. 그것은 그가 세상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도시,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겠으나 기본적으로 피사체에 담아낸 폭넓은 감정 때문일 것이다. 로베르 두아노의 프레임 안에서 우리는 노동자, 아이들, 연인, 배우 등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인간에 대한 두아노의 관심과 애정이 그들의 자연스러운 표정 안에 꿈틀거릴 때, 그의 사진은 로맨틱해진다. 이는 두아노를 흔히 수식하는 ‘휴머니스트 사진작가’라는 구분의 감성적 은유, 혹은 감성적 특성을 강조한 표현이기도 하다.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는 저널리스트이자 예술 역사가인 그의 손녀, ‘클레망틴 드루디유’가 연출한 다큐멘터리로, 유년시절부터 임종까지 한 예술가의 인생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카메라로 기록한 20세기 파리의 역사를 함께 보여준다. 흑백의 사진 및 자료 화면이 가진 고전미가 익살스러운 음악과 드로잉, 밝은 톤의 내레이션과 어우러지면서 전반적으로 경쾌한 리듬을 타고 흐르는 작품이다.


손녀 클레망틴 드루디유가 연출한 로베르 두아노 다큐
카메라로 기록한 20세기 파리의 역사도 함께 보는 재미



두아노의 사진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준 것이 ‘만남’이었던 만큼, 영화는 그가 만난 다양한 사람과 그 시기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 중에는 ‘상드라르’ ‘프레베르’ ‘사강’ 등의 작가들, 배우 ‘사빈느 아제마’, 사진작가 ‘사빈 바이스’도 있지만 ‘폴 바라베’ 같은 건물 관리인도 있다.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만나며 시선을 공유하고 가족처럼 깊이 교류하는 동안 두아노의 포트폴리오는 특종이 아닌 일상으로 채워져 갔다. 그러나 그가 촬영한 일상은 아주 특별한 찰나와 감정이 담긴 사진이 되었는데, 주변의 평범한 풍경을 다른 각도에서 조망함으로써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국내외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특히 영화의 제목에도 사용된 1950년 작,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는 당대 젊은이들에게서 풍겨나오던 자유와 열정을 생생하게 포착한 것으로, 포스터, 엽서 등 문구류를 비롯해 다양한 파생상품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영화에는 두아노의 예술관 또한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스스로 그가 삶에서 좋아하는 면만을 보여주는 작가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의 사진 한 장 한 장에 치열한 선택의 과정이 묻어 있음을 암시한다. 일례로 그는 히피 문화에 관한 사진 일색이던 1960년대 말, 미국 팜 스프링스의 평온한 풍경을 촬영했는데 변치 않을 미국의 모습을 남기고 싶다는 의지에서였다. 또한 안정적인 관계나 차분한 성격 대신 반항심과 무례함을 좋아했던 그의 성격도 등장한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찌푸린 시선이 느껴지는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도 일견 그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다. 두아노의 대표작부터 미발표작까지 수많은 작품들이 스크린을 지나가는 동안, 사진에서 묘사보다 암시의 기능을 강조했던 그의 신념을 확인할 수 있다.

두아노는 사진이 죽음의 예술이기에 슬프다고 말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과거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은 지나가버린 순간을 우리의 눈동자 위에, 머릿속에 정확히 되살려 놓는 부활의 예술이기도 한다. 두아노 생전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20세기 말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표정과 목소리와 생각은 오롯이 영상에 담긴 채 시간을 뛰어 넘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의 인생과 작품, 그리고 그가 경험하고 기록해온 20세기의 파리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작품이다.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81분)


더 테이블
한 테이블에 머물다 간 네 개의 인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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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창밖으로 주택가의 정겨움과 겨울의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어느 카페, 하루 동안 하나의 테이블에 머물다간 네 개의 인연이 소개된다. 저마다 꽤 어색하고 조금은 불편한 관계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진솔한 대화가 오간다. 오전 열한시에는 스타 배우가 된 ‘유진’(정유미)과 평범한 회사원이 된 전 남자친구 ‘창석’(정준원)이 재회한다.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는 얼마 간의 진실 게임이 필요하다. 오후 두 시 반에는 하룻밤 사랑 후 돌연 여행을 떠났던 ‘민호’(전성우)와 그에게 섭섭함을 숨길 수 없는 ‘경진’(정은채)이 멀찍이 마주보고, 오후 다섯 시에는 ‘은희’(한예리)와 ‘숙자’(김혜옥)가 가짜 모녀로 만나 결혼식장에 들어갈 계획을 세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아홉시에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앞둔 ‘혜경’(임수정)과 아직 미련이 남은 ‘운철’(연우진)이 결혼과 사랑에 대한 솔직한 담화를 나눈다. 각자 다른 사연과 생각과 감정을 보여주면서도 이들은 대화 끝에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게 된다.


정유미·정은채·한예리·임수정이 각 에피소드 주인공
김종관 감독, 클로즈업 등 특유의 감각적 미장센 눈길



정유미, 정은채, 한예리, 임수정. 네 명의 출중한 여배우를 하나의 테이블로 불러들인 김종관 감독의 재능은 단연 피사체의 아름다움을 잡아내는 남다른 감수성에 있다. 카메라 앞에 놓인 모든 것에서 그는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은 물론이요 내면의 아름다움과 잠재된 아름다움까지도 찾아내 스크린에 확대시킨다. 클로즈업은 이 마법의 강력한 도구다. 주먹만 한 배우들의 얼굴이 시종일관 커다란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데도 어색하거나 부담스럽기 보다 속눈썹의 미세한 떨림과 입가의 옅은 미소, 콧날의 적확한 각도를 통해 그들의 감정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게 된다. 인물들뿐 아니라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와 커피, 초콜릿 무스케이크, 홍차 따위도 예사로 보지 않게 만드는 연출력은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하나의 공간과 여백이 있는 네 개의 시간이 콘셉트의 전부지만, 다양한 매력을 가진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 때로 촉촉하고 때로 톡톡 튀는 대사를 듣는 재미가 70분의 러닝타임을 가득 채워주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70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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