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미의 브랜드스토리] 도나 카란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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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5   |  발행일 2017-08-25 제40면   |  수정 2017-08-25
美 ‘커리어우먼 룩’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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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우아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커리어우먼의 이미지가 살아숨쉬는 ‘도나 카란’의 의상.(왼쪽)‘도나 카란’의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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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도나 카란’의 설립자인 도나 카란.

커리어우먼이라면 누구나 옷장에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브랜드 ‘도나 카란(Donna Karan)’은 멋스러우면서 단순함과 실용성에 기반을 둔 미국 패션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사회활동이 활발한 현대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잘 이해하며 여성의 우아함과 관능성을 잃지 않는 선에서 커리어우먼에게 적합한 컬렉션을 디자인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실제로 도나 카란의 설립자이자 디자이너인 도나 카란이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이고, 누군가의 부인이자 엄마인 커리어우먼이었기에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커리어우먼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고, 본인이 입고 싶은 옷을 디자인함으로써 같은 처지에 있는 커리어우먼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멋스러움·단순·실용성에 기반둔 패션
신축성 좋은 보디슈트가 트레이드마크
품목간 ‘믹스 앤 매치’로 스타일 완성

여성의 실루엣 제대로 살리는 저지소재
랩스커트와 자연스러운 드레이핑 눈길
디자인의 기능성에 가치 둔‘뉴욕의 샤넬’


1948년 뉴욕에서 나고 자란 도나 카란은 테일러였던 아버지와 모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성공을 이룬 뉴욕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다. 집안환경의 영향으로 그녀 또한 자연스럽게 66년 파슨스 디자인스쿨에 입학해 패션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2학년 여름방학에 브랜드 ‘앤클라인’의 인턴으로 근무한 것이 계기가 돼 68년 정식 디자이너로 발탁되면서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앤클라인의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이후 회사를 옮겨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던 그는 74년 디자이너 앤 클라인이 사망하자 다시 앤클라인으로 돌아와 수석디자이너가 됐다.

84년까지 앤클라인을 이끌던 그는 85년 ‘일곱 개의 쉬운 품목들(Seven easy pieces)’이라는 콘셉트로 뉴욕의 정신을 대표하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동명의 브랜드 ‘도나 카란’을 론칭했다. 그녀는 첫 컬렉션에서 신축성이 좋은 블랙 보디슈트와 랩스커트, 바지, 테일러드 재킷, 캐시미어 스웨터, 가죽 재킷, 이브닝 웨어와 같은 실용적인 필수 품목으로 이루어진 에센셜 컬렉션을 선보여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그는 이 컬렉션에서 보통의 디자이너가 제시하는 잘 코디된 한 벌의 개념이 아닌, 품목 간에 서로 바꿔 입을 수 있는 ‘믹스 앤 매치’의 실용적인 개념을 선보이며 적은 품목으로도 다양한 조합을 가능하게 했다.

그가 선보인 아이템 중에서 보디슈트는 도나카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그녀는 컬렉션에서 기본 보디슈트에 터번이나 헤어밴드 등의 액세서리와 화려한 벨트를 함께 연출해 단순하지만 관능적인 스타일로 연출하거나 보디슈트 위에 랩 스커트나 바지, 테일러드 재킷, 아우터와 액세서리 등을 함께 연출해 실제 커리어 우먼들이 편안하면서도 멋스럽게 연출할 수 있는 스타일을 제시했다. 그의 컬렉션은 장식적인 요소가 많고, 다소 화려한 소재를 사용해 실용보다는 예술에 가까운 유럽 패션과는 달리 단순하고 기능적이며 품질이 좋은 미국식 캐주얼웨어 스타일을 추구했다.

도나카란은 미국의 경제가 호황을 누린 80년대, 미국 캐주얼웨어 시장의 확대와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여성들로 인해 브랜드도 함께 성장했다. 좋은 품질의 소재와 블랙, 그레이, 크림, 네이비, 카멜 등 매치하기 쉬운 컬러를 사용한 심플한 의상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당시에 주목받고 있던 파워슈트의 대안으로 제안돼 성공했다. 여성미를 살린 실루엣과 여성의 인체를 여유롭게 타고 흐르는 신축성이 좋은 저지소재를 사용한 의상은 다소 딱딱하고 중성적인 느낌이 강했던 파워슈트에 비해 부드러운 여성미를 표현하면서도 적당히 격식을 갖춘 듯한 느낌을 줬다.

도나카란의 컬렉션은 믹스 앤 매치해 맞춰 입기 쉽고, 한정된 품목의 옷으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커리어우먼의 바쁜 라이프스타일과 매우 잘 맞았다. 데이웨어와 이브닝웨어의 격식성에 차이가 있고, 비교적 엄격히 구분되는 서구 문화에서 그녀가 디자인한 아이템들은 약간의 액세서리나 재킷 등을 활용해 격식을 갖춘 듯한 이미지로 간단히 변신이 가능해 커리어우먼들이 일과 후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애주었다. 또 그녀가 선보인 허리에 둘러서 연출하는 랩스커트와 인체를 따라 흐르는 드레이핑된 디자인들은 여성의 인체미를 조이고 밀착시켜 인위적인 섹시함을 나타내기보다는 몸을 타고 흐르는 듯,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여성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보통 디자이너들이 고대 그리스풍으로 드레이핑하는 것과는 달리 큰 드레이프를 사용해 다소 체격이 큰 여성에게도 잘 어울리며 체형을 보완해주었고, 디테일을 최소화한 단순한 디자인으로 활동성을 살렸다.

그는 패션을 단지 예술로 표현하기보다는 그 시대의 사회정신과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실용성과 편안함을 기반으로 하는 디자인의 기능성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었으며, 이것이 샤넬에 비유돼 ‘커리어우먼을 위한 옷을 디자인한 뉴욕의 샤넬’이라 불리기도 했다. 도나 카란은 커리어 우먼에게 높은 지지를 받으며 코티상, CFDA상, 평생 공로상 등 다수의 상을 받고, 90년대 중반까지 큰 매출성장세를 보이는 등 미국패션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50년간 활약하던 도나 카란은 97년 회사 대표직에서 물러나 수석디자이너로 디자인에만 매진했다. 그러나 점점 인기가 시들해지며 사업부진을 겪게 된 도나 카란은 2001년 프랑스의 명품 대기업인 LVMH에 회사를 매각하며 난관에 놓이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와 결혼했다”며 디자인 책임자로서 디자인을 계속해 나가던 그녀는 매각 후 브랜드의 고유한 특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LVMH와 갈등설이 불거지기도 하는 등 악재가 겹쳐 2015년 패션계를 은퇴했다. 그의 은퇴 이후 후임을 임명하지 않은 LVMH사는 보다 젊은 라인의 DKNY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으며 이로써 뉴욕의 패션계를 이끌던 브랜드 중 하나인 도나카란은 사실상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프리밸런스·메지스 수석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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