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전북 부안 내소사·곰소염전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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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5   |  발행일 2017-08-25 제36면   |  수정 2017-08-25
내소사엔 천년 세월을 간직한 느티나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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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산 관음봉 아래 펼쳐져 있는 내소사. 첫 눈에 보이는 것은 천년된 느티나무다. 그 좌우에 보물인 고려동종과 지방문화재인 설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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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고 장식적인 대웅보전의 공포와 아름다운 꽃살문.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지은 건물이다.

영원으로 기억되는 형상들이 있다. 10여 년 전 보았던 내소사의 천년 느티나무와 곰소의 소금밭이 그렇다. 그때 느티나무는 산봉과 절집들을 모두 지우고 저 혼자 겨울 안개비 속에 서있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상기할 것이 없는 최초의 시간 같았다. 그리고 그때 소금밭은 스스로에 몰입한 채로 조용히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낡은 소금창고와 염부에게서 느껴졌던 소멸의 징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영원의 상징인 순환에 오롯이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다시 그들에게로 향하면서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들의 안녕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633년 백제 무왕때 혜구두타가 창건한 절
처음엔 ‘소래사’…이후 ‘내소사’로 중건
절 입구 600m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 압권
대웅보전 복잡한 포와 꽃살문 장식 유명

하얗고 푸른 소금꽃이 만개한 곰소염전
1942년 섬이던 곳에 제방 쌓으면서 형성


◆능가산 내소사

이렇게나 너른 주차장이 있었나. 이렇게나 복작거리는 가겟집들이 있었구나. 절집 아래의 풍경에 대해서는 한 톨의 기억도 없다. 겨울과 여름의 차이도 있을 테고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 탓도 있을 게다. 가게에는 젊은 부부가 많이 보인다. 저마다 농사지은 것들을 펼쳐 놓고 수줍게 권하는 땀에 젖은 얼굴들이다.

그리 길지 않은 사하촌의 끝에서 일주문을 마주한다. 산 향기가 훅 불어온다. 일주문에 ‘능가산내소사(楞枷山來蘇寺)’ 현판이 걸려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변산(邊山)은 현의 서쪽 25리에 있는데 능가산 혹은 영주산(瀛洲山)으로 불린다”는 기록이 있다. 변산이 곧 능가산이니 여기가 곧 반도 땅의 중심이겠다. 일주문은 엄청난 덩치의 공포와 지붕을 이고 있다. 매우 굵은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양쪽에 동자승 같은 가느다란 기둥이 협시하고 있지만 가슴을 누르는 듯한 압도적인 무거움에 그 곁을 둘러서 들어선다.

하늘로 곧게 치솟은 전나무들이 길을 연다. 누구나 쉬이 들어설 수 있는 평평한 길이고, 쭉 뻗은 듯하면서 시나브로 슬쩍 굽이지는 길이다. 숲 그늘은 적당히 맑고 길에는 군데군데 빛이 웅덩이져 있다. 전나무 숲이 형성된 시기와 이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아마 400여 년 전 내소사를 중건할 때 이 숲도 함께 조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길은 약 600m 이어진다. 피안교에 다다라 “정말?” 하고 뒤돌아본다. 600m가 몇 발자국으로 느껴진다.

피안교를 건너면 전나무는 단풍나무와 벚나무로 바뀐다. 봄꽃과 가을 단풍을 위해 번갈아 심었다 한다. 길 너머 왼쪽 언덕진 자리에 석축을 가지런히 쌓아 올려 조성한 부도밭이 보인다. 석축 아래에 백일홍이 만개해 눈부시다. 천왕문을 지나면서 산의 오름세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다. 낮은 축대와 계단이 거듭되면서 조금조금 높아진다. 사천왕문을 지나 오르자 넓게 펼쳐진 경내의 한가운데에 선 느티나무가 보인다. 그것은 능가산 산봉들에 둘러싸여 있고 저 만한, 혹은 저보다 큰 나무와 나란히 서있다. 잎은 무성하고 그늘은 짙으며 곁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성인다. 나무는 혼자가 아니었고, 매우 건강해 보였다.

느티나무의 왼쪽에 보물인 고려 동종을 모신 종각이 있다. 오른쪽에는 선이 곱디고운 설선당이 보인다. 봉래루와 대웅보전은 느티나무에 가려져 있다.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인 633년 승려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 했고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세월이 흐르면서 소래사는 사라졌으나 1천년이 지난 후 인조 11년인 1633년 청민(淸旻) 스님이 소소래사를 계승해 대웅보전을 지었다. 큼지막한 바위들을 주춧돌로 삼은 봉래루 기둥 아래를 지나면 관음봉(觀音峰) 아래 대웅보전이 자리한다. 복잡한 포들과 아름다운 꽃살문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대웅보전은 무구하고 말간 얼굴이다.

어느 목수가 하나하나 꽃을 새기던 시간, 공포의 단청이 흐려지는 시간, 새로운 당우들이 들어섰던 시간. 느티나무는 내소사의 모든 시간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추억을 거쳤으면서도 아무것도 상기할 것이 없다는 듯 느티나무는 오늘도 그렇게 서 있다. 나무는 스스로 경계를 지양하고 순환함으로써 영원을 상징한다. 언제 소래사가 내소사가 되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어쩌면 저 느티나무의 오늘을 수년간 보아온 누군가가 명명했을지도 모른다. 거듭 새로운 저 나무처럼 와서(來), 소생하라(蘇)고.

◆곰소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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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소염전. 밭을 일군 지 75년, 많이 낡았던 소금밭은 근래 지원을 받아 많은 부분이 보수되었다.



땅 위에 하늘이 밝게 펼쳐져 있다. 풍경 위에 풍경이 겹쳐진다. 하얗고 푸른 소금밭, 여전히 스스로의 몰입 속에 안녕하다. 조금은 변했다. 검게 쓰러져 가던 소금창고는 일부 새로워졌다. 밭 바닥에는 반듯한 타일이 깔렸고 밭둑은 새 나무판으로 탄탄하게 세웠으며 수레를 쉽게 밀 수 있는 컨베이어 벨트도 있고 생채기 없는 플라스틱 수레도 생겼다. 간수를 보관하는 해주 지붕도 새것이 많이 보인다.

곰소염전의 역사는 75년쯤 되었다. 1942년 원래 섬이었던 곳에 제방을 쌓아 도로와 항구를 만들자 자연스레 염밭이 형성되었다. 원래 이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소금이 유명했다. 당시에는 바닷물을 끓여 만든 화염이었다. 염밭을 일구면서 이곳의 소금은 특별해졌다. 바닷물에는 미네랄이 많이 함유되어 있었고 5월이면 내소사의 소나무에서 바람을 타고 온 송홧가루가 염전에 쌓였다. 지금은 귀한 황토 소금도 생산한다. 지금도 곰소염전의 소금은 유명하지만 어느 때부턴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한낮의 염전에는 두 분만이 보인다. 창고 앞 그늘에서 소금 포대를 손질하는 노인과 밭둑을 분주히 오가며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는 한 사람. “소금꽃을 깨주는 거야. 그래야 좋은 소금이 돼.” 그늘 속의 노인이 알려 주신다. 노인 곁에 아이 목욕탕 같은 미니 염전과 ‘염전 체험’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나랏돈으로 보수를 했지.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조건이 있었어. 원래 새벽 1시나 2시가 일하는 시간이야. 있다가 새벽에 다시 나와야 해.” 소금은 하늘과 인간 노동의 교환으로 인한 영속적인 순환 속에서 탄생한다. 영원을 상징하는 순환, 그것에는 생각지 못한 여러 얼굴이 있음을 깨닫는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를 타고 광주방향으로 가다 담양분기점에서 고창방향으로 간 후 고창분기점에서 서해안고속도로 부안·군산방향으로 간다. 줄포IC에서 나와 30번 국도를 타고 가다 연동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가면 내소사, 30국도로 계속 가면 곰소염전이다. 염전을 먼저 들르고 곰소항이 있는 진서면을 관통해 석포삼거리에서 우회전해 내소사로 가도 된다. 내소사 입장료는 어른 3천원, 청소년 1천500원, 어린이 500원.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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