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정치언론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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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5   |  발행일 2017-08-25 제23면   |  수정 2017-08-25
[조정래 칼럼] 정치언론

검찰에게 미안하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 격이 되고 말아서다. 두 달 전 이 난을 통해 ‘정치검찰’이란 칼럼을 게재한 적이 있는데, 전후와 우선순위가 잘못됐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칼럼은 정치권에 줄을 대는 검사와 정권에 휘둘리는 검찰을 질타하고 그 개혁을 요구했다. 남에 눈의 티만 보고 내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한 소이니 부끄럽다. 나는 ‘바담 풍’ 하더라도 너희들은 제대로 ‘바람 풍’ 하라고 우격다짐을 하는 처사였음을 다시 한번 반성하며, 늦었지만 정치언론은 정치검찰에 앞서 개혁해야 할 적폐라고 순위매김을 하고자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2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방송의 자유와 독립은 꼭 실현해야 할 과제”라며 “방송사 스스로 책임을 다해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문했다. 방통위가 이날 내놓은 올해 주요 정책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의 재허가 심사 때 보도·제작의 중립성과 자율성을 중점적으로 살피겠다는 보고였다. 한마디로 방송사의 살림살이 구석구석까지 시시콜콜 간섭해야 할 정도로 방송의 공정성을 의심한다는 징표다.

방통위의 방송 개혁 기조는 공영방송을 바라보는 문 대통령의 오래된 시각을 토대로 직조됐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 3월 후보토론회에서 “공영방송의 언론 자유와 공공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공영방송을 정권의 방송으로 만들어 공영방송이 다 망가졌다”고 일침을 가한 그는 “공영방송이라도 제 역할을 했다면 대통령이 탄핵되고 중대한 범죄 피의자로 소환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공영방송 경영진에 직격탄을 날렸다.

KBS, MBC 두 공영방송은 때마침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전례 없는 내홍과 진통을 겪고 있다. KBS 기자들은 뉴스의 신뢰성을 문제삼아 제작 거부를 결의했고 MBC는 기자와 PD, 아나운서들이 제작 거부에 들어간 데 이어 파업 찬반투표에 들어갈 예정이다. 여기에 내부 블랙리스트 논란까지 겹쳐 노조와 경영진 사이 갈등이 벼랑 끝 대치로 치닫는 중이다. 작금의 공영방송 파행은 정권의 방송장악 시나리오와 여기에 선제적으로 영합한 정치언론인들에 의해 오래전에 잉태됐던 환부가 곪고 곪은 끝에 터진 예견된 사태이자 사건이다.

외부에 알려지고 있는 공영방송의 더 심각한 위기는 조직 내부의 붕괴다. 경영진과 사원들 사이 오래 벼리고 벼린 감정의 날은 치유와 회복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시퍼렇다. 구성원 사이 적대와 반목은 상하·동료 간 유대감을 고사시키면서 서로 헐뜯고 비방하는 풍토를 일상화했다. 방송사 한 기자는 이를 두고 외부의 공격에 대한 자가면역력을 잃어버렸다고 진단했다. 자해적 내부싸움에 골몰하는 콩가루 집안이라고도 했다. 궤멸 수준의 이 같은 인간성 망가짐은 조직의 정상화 이후에도 근종되지 않을 종양임에 틀림없다.

방송을 장악하고 싶어하는 권력의 욕구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 정권이든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방송, 정보기관 등 권력기관을 우리 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정권의 욕망은 자연스럽거나 정당하지는 않지만 본능에 가깝고 집권자의 자율과 양식에 의해 스스로 제어됐다는 얘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무하다. YS는 대통령이 된 후 ‘안기부 거 쓸 만한 기데…’라고 측근들에게 이야기하곤 했다는 우스갯소리는 웃음 너머 진실을 정곡으로 찌른다. 권력기관이 알아서 정적들의 사생활, 즉 ‘내로남불’에 이르기까지 일거수 일투족을 실시간으로 보고해 주니 얼마나 기특하고 예뻤을 것인지 짐작할 만하다.

원죄는 정치언론인들에게 있다. 정권의 바뀜에 따라 득세를 노리고 완장을 차려는 그들은 언론장악의 부역들이다. 정치권력과 정치언론인 사이 유착의 악순환, 그 고리는 정권의 선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도에 의해 단절될 수밖에 없다. 검찰이 됐든 언론이 됐든, 혹여 문재인정부가 정치검찰과 정치언론을 척결한답시고 정치검사와 정치언론인을 동원하는 모순을 또다시 답습하지는 않을까 노파심도 없지 않다. 사법과 언론의 공공성은 정권의 아전인수적 개혁으로는 확보가 불가하니까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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