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지방분권이 정의다’] <8>프랑스의 지방살리기 프로젝트-분권·균형발전

  • 노진실
  • |
  • 입력 2017-08-25   |  발행일 2017-08-25 제3면   |  수정 2017-08-25
지방도시 스트라스부르에 EU기구·최고 엘리트 교육기관 ENA
20170825
프랑스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 프랑스정부는 수도 과밀문제 해결과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파리에 있던 ENA를 국토 동쪽 국경지대의 지방도시 스트라스부르로 이전했다.
20170825
20170825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비교가 가능할 정도로 ‘수도권 집중’이 심한 나라였다. 다시 말해 프랑스의 유명한 수도 ‘파리’에 모든 것이 몰려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3년 ‘지방분권형 개헌’을 단행하고, 꾸준히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을 통한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해 온 결과, 프랑스의 지방도시들은 서서히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지방살리기 프로젝트’의 양날개가 된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 정책에 대해 알아본다.

수도권 인구 억제·균형발전 위해
90년대 들어 공공기관 지방 분산
정치적 이념·정권 상관없이 추진

프랑스 분권 개헌 이후 큰 변화
수도-지방도시 소득 격차 줄고
지방 일자리 창출·경제 활성화


◆프랑스의 지방교육도시 스트라스부르

지난달 1일 취재진이 찾아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이날 전세계의 이목이 스트라스부르에 집중돼 있었다. 첫 유럽연합장(葬)으로 치러진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의 장례식이 바로 이곳,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유럽의회에서 거행됐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해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 등 전세계의 수많은 전·현직 정상들이 콜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스트라스부르를 찾았다.

스트라스부르는 프랑스 알자스주(州)에 속한 지방도시 중 하나다. 지리적으로 동쪽으로 치우쳐 있기 때문에 수도권보다는 독일 국경도시들과 더 인접해있다. 이 지방도시에 유럽의회와 유럽회의가 위치해 있다. 프랑스 수도권도 아니고 파리와 동쪽으로 447㎞나 떨어진 외곽 도시에 대표적 유럽 공동체 기구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최고 엘리트 교육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도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해 있다.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해 올랑드, 시라크 전 대통령 등 많은 유력 정치인과 관료들이 ENA 출신이다.

원래 수도 파리에 위치해 있던 ENA는 스트라스부르로 파격적인 이전을 했다. 1991년 프랑스정부는 중앙행정·교육기관 지방분산화 정책의 일환으로 ENA 등 20여개 공공기관을 파리 교외와 지방도시로 이전하기로 결정하고, 이전 작업을 추진했다. 당시 프랑스 정부가 밝힌 이전의 이유는 국토의 효율적 운영과 수도와 지방 간 균형있는 발전, 그리고 지방분권화 촉진이었다. 하지만 고급 공무원 양성을 목적으로 1945년 파리에 세워진 ENA를 지방도시 스트라스부르로 완전히 옮긴다고 하자 격렬한 반대가 일었다. 프랑스 정부에서 오랫동안 기득권을 행사해 온 ENA 재학생과 동문들은 “ENA를 지방으로 이전하느니 차라리 폐교시켜라”며 시위를 했다. 프랑스의 상징이자 긍지인 ENA가 파리를 떠나선 안 된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이유였다.

그러나 정부는 꿋꿋하게 ENA 이전을 추진했고, 이전 결정 후 당장 그 이듬해부터 신입생을 스트라스부르에서 뽑도록 했다. 한동안 파리와 스트라스부르 두 곳에서 운영되던 ENA는 2005년 단기교육기관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스트라스부르로 이전했다.

ENA 앞에서 만난 스트라스부르 주민 마르셀씨(37)는 “ENA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있는 학교다. 내가 사는 지역에 ENA가 위치해 있다는 것이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며 “또 ENA 주변의 아카데믹한 분위기는 주민들에게 좋은 산책 환경도 제공해 준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국토균형발전 정책

프랑스의 공공기관 지방이전 역사의 시작은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파리권의 인구집중을 억제하고, 경제적 침체와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는 지방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시작됐다.

그후 1990년대 들어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공공기관 이전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파리권 인구집중 대처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추진한 것이다.

크레송 총리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1991년 ‘공공기관이전단’이 신설됐으며, 1991년부터 2003년까지 315개 기관, 4만명 이상이 지방으로 이전했다. 프랑스의 레지옹(지역)에는 인구규모 100만명에서 2만명 이하의 소도시까지 수도권의 공공기관이 다양하게 입지해 있다.

프랑스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의 특징은 상시적 전담추진조직을 구성해 예산 지원 및 이전 계획을 체계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이다. 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낙후지역의 발전과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는 수단으로 이전지역을 선정했다는 점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지역의 과학·기술역량 강화와 산업발전을 위해 조성 개발된 ‘테크노폴’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연계하는 전략을 써, 지방의 테크노폴이 수도권에서 이전하는 공공 연구개발기관을 유치해 산·학·연의 조화를 도모하도록 했다.

프랑스가 전략적으로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을 실시한 결과, 교육과 연구기능 분야에서 지방경제에 파급효과와 시너지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방에서 파리권으로의 학생이동이 감소하고, 지방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는 효과도 뒤따랐다.



◆프랑스의 지방분권형 개헌

대표적인 중앙집권적 국가였던 프랑스는 독일, 스위스 등 인근 연방제 국가와 달리 오랫동안 국가(중앙)에 강력한 권한과 역할을 부여해 왔다. 하지만 중앙집권적 전통이 현대의 복잡하고 다양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며,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미테랑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가행정구조 개혁의 일환으로 1982년부터 지방분권 개혁이 추진됐다.

1982년 지방분권 개혁을 위해 지방분권법을 제정하고 중앙의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했지만, 관련 법률 제정 만으로는 지방분권에 한계를 드러냈다.

지방분권 관련 법률이 40여개나 제정됐지만, 중앙의 관료가 지방분권 시행과정에서 간접적으로 간섭하거나 개입해 제동을 거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지방재정 확충도 당초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2002년 당선된 시라크 대통령은 지방분권을 보다 확고히 하기 위해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을 추진하게 되고, 이듬 해 지방분권형 개헌을 하기에 이른다.

개정된 프랑스 헌법에는 우선 제1조에 국가조직은 ‘지방분권화’돼야 한다고 규정했으며, 보충성의 원리와 자치입법권 강화, 재정지출의 자주성, 재정격차 시정을 위한 지자체간 재정조정제도 등이 규정돼 있다. 주민투표제도 헌법에 명시했다.

지방분권 개헌 이후 프랑스 사회에는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 인구 증가세가 둔화됐으며, 수도권과 지방 간 소득 격차도 감소 추세를 보였다. 스트라스부르, 툴루즈, 낭트 등 지방도시들은 지역혁신을 통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 인구의 지속적 증가라는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도시에 대한 민간기업의 신뢰도와 지명도 역시 향상됐다.

이를 두고 프랑스 렌느2대학 기 보델 교수는 “이제 프랑스에선 파리 수도권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표현했다.

프랑스 지방분권에 대해 오래 연구해 온 경성대 배준구 교수(행정학)는 “지방분권은 균형발전 정책에 비해 그 효과를 단기간에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지방살리기를 위해선 이 둘 모두 중요하다. 프랑스도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각각 꾸준히 추진해왔다”며 “특히 프랑스 지방분권 개혁은 정치적 이념이나 정권 교체를 초월해 추진됐고, 결국 개헌에도 이를 수 있었다. 현 정권은 지방분권이나 균형발전에 대해 강한 의지가 있지만, 정권이 바뀌면 또 정책이 뒤집힐지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정권에 관계없이 지방분권을 추진해 온 프랑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글·사진=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