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TK의 정치 IQ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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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3   |  발행일 2017-08-23 제31면   |  수정 2017-08-23
[박재일 칼럼] TK의 정치 IQ

기상청장이 호남이나 비(非) TK 출신이 많았던 때가 있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경상도 TK정권이 30년 이상 정권을 잡던 시절이다. ‘과학과 기후’의 시대인 지금에야 기상청장의 위상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권력과 거리가 멀었던가 보다. 민주화 이후에도 알짜 장·차관 자리는 권력 중심부에서 차지하고, 기상청장은 별반 노리는 데가 없었다. 역설적으로 공정한 인사다.

문재인정부가 남재철 기상청장을 임명했는데 안동고 출신으로 TK다. 본인에게는 결례인지 모르나 쓴웃음이 나왔다. 기상청장은 아직도 권력 기상도의 바로미터인가.

카톡으로 이런 내용이 돌아다닌다. ‘이낙연 국무총리,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김용우 육군 참모총장,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공통점은?’ 광주제일고다. 역대 이런 인사가 있었느냐고 묻는다. 이건 다소 자극적 통계이고, 실제로 몇몇 신문들은 문재인정부의 파워엘리트들을 분석해 광주제일고가 경기고를 제치고 1위로 등극했다고 보도했다. 과거 대한민국 권력 산실 고교의 하나였던 경북고가 크게 퇴조했다고 덧붙였다.

정치를 규정하는 개념 중 가장 통용되는 하나는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가치란 유무형의 자원, 물자, 인프라, 직위를 통칭한다. 그것을 권위적으로 배분한다는 것인데, 이는 민주적이든 비민주적이든 권력을 동원해 다소 자의적으로 나눠준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정점의 대통령 권력을 가져간 쪽에서 행하는 어느 정도의 자의적 인사(人事)는 정치의 속성상 어쩌면 불가피하다. 대통령제를 지구상에 처음 정착한 미국에서도 ‘스포일스 시스템’(spoils system·엽관제)이라고 해서, 선거에서 이긴 대통령이 수만개의 자리를 마음대로 임명하는 것이 관행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딸, 사위까지 무슨무슨 보좌관에 앉혔는데도 미국인들이 들고 일어나 촛불시위를 하지 않는 이유다. TK가 퇴조했다고 하면 TK민들은 굉장히 흥분해야 할 것 같은데 예전 같지는 않다. 지역 언론도 과거와는 달리 매달리지도 않는다. 왜 그런가.

아무래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가 커보인다.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지지여부를 넘어 전대미문의 사건을 거치며 정치, 즉 권력의 허무함 같은 그런 분위기가 스며들었다.

또 하나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TK민들도 점차 정치적 지능을 진화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도대체 대통령 권력을 고향 출신이 가져온들 우리가 언제 나아진 게 있느냐’는 실용적 반문이다.

이 반문은 사실 어리석은 결론일 수 있다. 왜냐하면 정치는 권력을 가져오는 쪽이 배분하니까 가져오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실용적 반문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우리가 무수히 겪은 경험 탓이다. 예를 들면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즉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지만씨의 육군사관학교 동창들이 무슨 육군대장이나 사령관에 임명된다고 해서 지역에 무슨 실익이 돌아오겠는가. 물론 대한민국 역사발전의 큰 방향을 놓고 겨루는 권력과 이념의 다툼은 별개로 하고서다.

정치적 IQ가 진화될수록 국가를 구성하는 각 지역은 허무한 권력을 뒤로하고 ‘현찰’을 요구한다. 아무리 민주화시대라도 정치를 통한 배분의 속성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권력 포스터를 특정 고교가 쓸어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지역의 인프라, 산업, 예산 투입이란 실리적 이익은 놓칠 수 없다. 지역 감정을 부추기자는 것이 아니다. 서해안의 그 무수한 섬을 연결하는 다리나 7천억원 예산을 국가 재정 항목에까지 집어넣어 완성한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같은 현찰을 TK도 배워야 한다면 너무 치사한 것일까.

예를 들면 K2와 대구공항 통합이전만 해도 군과 민간공항을 함께 옮긴다는 별로 세련되지 않는 프로젝트지만, 기왕 옮긴다면 ‘기부 대 양여’의 틀에 갇혀 머뭇거리지 말고 민간공항에 대한 국토부의 예산 투입을 요구해야 한다. 첨단의료복합단지도 그렇다. 오송에 기가 죽어 대구는 이럴 수밖에 없다는 자조는 TK의 기개가 아니다. 최소한 조 단위의 R&D투입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 IQ다.

편집국 부국장 겸 정치부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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