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실패한 하명수사

  • 마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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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3   |  발행일 2017-08-23 제31면   |  수정 2017-08-23

1천600억원대 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문석)는 최근 정 전 회장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해 달라는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부실회사를 비싸게 사들여 회사에 큰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협력업체로부터 고가의 와인 ‘로마네꽁띠’를 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포스코 비리수사의 핵심 대상자였던 정 전 회장이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 선고가 이어지면서 검찰의 청와대 하명(下命)수사 관행이 근절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포스코 수사는 청와대-법무부-검찰로 이어지는 박근혜정부의 대표적인 하명수사로 알려지고 있다. 2015년 3월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의 ‘부패와의 전면전’ 선언 이후 시작된 이 수사는 포항지역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검찰은 포스코뿐 아니라 협력업체 30여 곳에 대해 7개월가량 저인망식 수사를 벌였다. 압수수색과 줄소환, 별건수사 등 그야말로 먼지떨이식 수사를 진행했다. 지역의 한 기업인은 포스코건설 공사를 수주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아야 하는 고초를 겪었고, 명예까지 실추됐다. 포스코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업체들도 큰 타격을 입어 포항 경제는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IMF 외환위기때도 잘 나갔던 포항철강공단에서는 2015년 19개 업체가 휴·폐업했고, 2016년에는 17개 업체가 문을 닫았다고 한다. 또 포항철강공단 주변 식당들이 포스코 수사 동안 휴폐업이 속출하는 등 포항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기업 포스코를 멍들게 하고 포항 경제를 망친 포스코에 대한 하명수사는 국정농단의 핵심인 최순실이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거둘 목적으로 검찰을 동원해 사정정국을 조성한 것이라는 설이 파다하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국정농단 세력과 검찰이 민생을 담보로 위험한 칼춤을 춘 것이나 다름없다. 이 때문에 이 수사를 주도한 인물을 발본색원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현 정부가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적폐(積弊)청산에 나서고 있는 만큼 포스코 수사에 대한 진실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마창성 동부지역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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