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학의 전통문화이야기] 正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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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3   |  발행일 2017-08-23 제30면   |  수정 2017-08-23
[손영학의 전통문화이야기] 正歌
대구시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쉽사리 들을 순 없지만 한번 들으면 쉬이 잊히지 않는 음악이 있다. 25년여전, 당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인 김경배 경북대 국악과 교수(현 월하문화재단 이사장)를 통해 듣게 된 정가(正歌)가 그러하다. 그 느릿하면서도 유장한 선율은 세월이 흘러도 귀에 선하다.

우리 선인들은 ‘성정을 바르게 기른다’는 예악(禮樂) 정신을 추구하였다. 인위적인 기교와 화려함보다는 자연을 닮은 소리를 벗하였다. 정가라고 불리는 가곡(歌曲)·가사(歌詞)·시조(時調)는 글자 그대로 ‘바르고 반듯한 노래’다. 정가는 엄격한 구조 속에서 비슷한 선율들이 반복되면서 시김새의 변화를 통해 구절마다 깊은 멋을 간직하고 있다. 정가의 최고 여류가객으로 ‘월하 이전에 월하 없었고 월하 이후 월하 없었다’는 극찬을 받은 김월하 선생(金月荷·1918∼96)이 독보적이다.

정가 중에서도 특히 가곡은 가장 느린 음악이다. 가곡은 시조를 5장 형식에 얹어서 부르는데, 세피리·대금·가야금·거문고·해금 등 관현악 반주를 갖추어야 한다. 고려 말엽에 처음 생겨 중인(中人) 이상의 식자 계층과 선비들이 즐겼던 음악이기에 노랫말을 담은 책이 많이 전하고 고악보 대부분에도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은 도대체 가곡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가 의아해 한다. 말로 재단할 순 없지만 장중하면서도 엄격한 구조와 형식, 느리면서도 여유로운 멋은 어떠한 소리도 따를 수 없을 듯하다. 또한 가곡은 거친 소리를 거부한다. 장인(길게 끄는 것)할 때 나오는 그 여유로움은 가곡만의 아름다움이요, 극치의 세계다. 가곡을 부르는 이가 아니면 수긍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부르면 부를수록 머리가 ‘깨끗’해진다고 한다. “아무리 고단해도, 아니 고단한 날일수록 소리를 해야 머리가 가뿐해지고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아진다.” 옛 사람들은 가곡을 부를 때 양식척(量息尺)이라 하여 맥박 호흡을 기준으로 박자를 맞추었다.

사실 일반인에게 가곡은 생경하다. 흔히 가곡이라면 시에 곡을 붙인 서양성악곡과 ‘홍난파’나 ‘슈베르트’를 먼저 떠올린다. ‘전통가곡’이라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한다. 가곡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귀에 익지 않아서이다. 유행가처럼 늘 듣는다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가곡의 보급 역시 힘겹다. 배우는 이들도 쉬운 것만 하려고 들고, 느린 것에 지겨워한다. 부를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있다. 가곡이 밀려나는 현실이 서글프지만 불가항력이다. 일본의 ‘가가쿠’와 ‘노’는 느리면서 아주 단순한 노래인데도 그들은 자긍심을 갖는다. 가부키 전용극장엔 상시 공연이 열린다.

유네스코는 2010년 11월 한국의 가곡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이런 신비한 음악이 전승되고 있다는 데 놀라움과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가곡은 지역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성들이 주로 불렀던 노래로 이 고장 역시 영조시대에는 영남가단을 이룰 정도로 번성했다. 전라도가 판소리로 알려졌듯이 정가가 우리 지역의 소리문화로 자리할 배경은 충분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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