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독립운동 정밀한 조사 이뤄져야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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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2   |  발행일 2017-08-22 제30면   |  수정 2017-08-22
[취재수첩] 독립운동 정밀한 조사 이뤄져야

3·1 독립만세운동이 첩첩산중 상주에 전파되기까지는 20여일의 시간이 걸렸다. 강용석·한암회·조월연 등은 상주 5일장날인 1919년 3월23일 장터에서 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이날 오후 5시30분쯤 장이 거의 파할 무렵 한암회가 시장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자 장에 나왔던 군중이 이에 호응했다. 이 운동은 4월13일까지 이어졌다.

20여일간 펼쳐진 상주항일독립만세운동과 관련된 9명이 주동자로 체포됐다. 상주공립보통학교 졸업생과 재학생, 경성중동학교 학생, 경성보급학교 학생 등이었다. 경성으로 유학을 갔던 학생들은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몸을 피해 고향으로 내려와 있었다. 상주문화원이 발간한 ‘상주의 항일독립운동사’에 따르면 주동자로 붙잡힌 9명 중 김성덕 등 몇몇은 상주 장터 만세운동 이후 서울에서 독립 관련 유인물을 배포하다 체포됐다.

만세운동 주동자로 일제에 체포된 9명 중 5명은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돼 훈·포장을 받았다. 그러나 4명은 서훈대상에 들지 못했다. 같은 목적으로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항일정신을 잃지 않고 계속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유공자로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이 사실을 파악한 ‘희망상주21’이 그들의 유공 인정을 위해 후손을 대신해 나섰다. 후손은 고령이어서 보훈처에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강용철 부회장은 희망상주21을 대표해 국가보훈처에 김성덕과 송인수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했다. 이에 대한 보훈처의 답변은 ‘공적 내용이 포상 기준에 미달’이었다.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기준은 독립유공자서훈 공적심사위원회가 정한다. 독립유공 포상 대상은 독립운동의 활동내용, 단체에서의 직위, 활동 기간, 옥고 기간, 독립운동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 다양한 조건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한다. 예를 들어 다른 활동의 근거자료가 없고 수형생활만 증명할 수 있을 때는 수형기간이 3개월 이상일 경우 포상 대상에 들어갈 수 있다.

상주항일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체포되고도 서훈되지 않은 3명은 옥고를 3개월 이상 치르지 않았기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3명은 징역 6월~1년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체포된 후 재판을 받을 때까지 70여 일간 갇혀있으면서 모진 고문을 받았다.

후손은 붙잡혀 있는 동안 고문을 심하게 당해 몸이 쇠약해져 죽을 지경에 이르자 재판에서 집행유예로 풀어줬다고 주장했다. 죄(?)가 가벼워서가 아니라 몸이 못견디게 생겼으니 하는 수 없이 석방했다는 것. 양형이 그대로 집행된 사람보다 더 긴 형을 정하고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 그 증거라는 설명이다. 양형은 죄질에 따라 매기고 고문을 심하게 당해 형집행이 불가능한 사람을 풀어줬다는 이야기다.

후손의 말은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 그러나 만약 후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결과적으로 더 헌신적인 항일운동을 한 독립운동가를 단지 옥살이를 덜 했다는 이유로 유공자로 인정하지 않은 우를 범한 게 된다. 독립유공 심사에서 좀 더 세밀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이하수기자<경북부/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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