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한번 안 쳤는데 DDT 검출”…전문가 토양오염에 무게

  • 유시용,최영현,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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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2 07:26  |  수정 2017-08-22 07:26  |  발행일 2017-08-22 제6면
영천·경산 살충제검출 양계장주 역학조사 요구
“소독약 한번 안 쳤는데 DDT 검출”…전문가 토양오염에 무게
21일 오후 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DDT)이 검출된 영천 한 산란계 농장에서 농장주 이몽희씨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이씨는 농림축산식품부 전수조사에서 DDT가 검출되자 자진해서 출하를 중지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영천·경산 친환경 양계장 두 곳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인 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DDT)이 검출됐다는 정부의 발표에 해당 농장주가 역학조사를 요구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농장주 이몽희씨 조사 의뢰에
관련기관 업무 미루기로 지연
나흘 지난 21일에야 토양 채취

허용기준치 이하 출하는 가능
“소비자 혼란만 가중” 비판도

친환경 인증기관 64곳 난립
토양성분·잔류농약 검사 없어
사후관리·재인증절차 정비 필요


◆토양오염 가능성에 무게감

영천 도동 닭실재래닭연구소 농장주 이몽희씨(55)는 21일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DDT를 전혀 사용한 적이 없다. 정확한 오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이어 “6년 동안 소독약 한 번 친 적 없다. DDT를 본 적도 없는데, 구해 오면 수백만원을 주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산 농장주 역시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DDT가 검출된 영천과 경산 양계장은 공교롭게도 과거 복숭아·사과 등 과수원을 한 곳으로 드러나 토양오염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2009년부터 재래닭을 반방사 방식으로 사육하고 있는 이씨는 “과거 과수원 부지였던 이들 농장의 토양이 DDT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재래닭 유정란은 재래종을 복원해 방사시켜 생산하는데 흙을 쪼아먹는 닭의 습성상 토양을 통한 잔류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토양에서 DDT가 검출되지 않으면 계란 폐기와 닭의 살처분은 물론 농장을 폐쇄하겠다”며 진정성을 호소했다.

◆DDT 검출에서 발표까지

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 영천사무소 직원이 이씨 농장을 방문해 계란 20개를 수거해 간 때는 지난 15일 오전 11시50분쯤이다. 이날 영천 16개 농장(무항생제 10가구, 일반 6가구) 중 15곳은 수거검사 결과 ‘적합’이란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이씨 농장에서 수거된 계란은 경산의 I농장 계란과 함께 2차 정밀검사를 위해 다음날 칠곡 소재 가축위생시험소로 보내졌다.

이씨는 17일 오후 4시쯤 농관원 영천사무소로부터 DDT가 검출됐다는 사실을 공식 통보받았다. 이에 18일 농식품부, 경북도, 농산물품질관리원 등에 역학조사를 정식으로 요구했다. 역학조사에 대해 각 기관들이 자신의 업무가 아니라며 회피하자 이씨는 다시 19일 총리실, 농식품부, 환경부에 역학조사 요구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농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역학조사 실시에 대한 언급 없이 20일 친환경 농가 두 곳의 살충제 성분 전수검사 결과 DDT 성분이 허용기준치(0.1㎎/㎏) 이하인 0.047㎎/㎏과 0.028㎎/㎏이 각각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경북도동물위생시험소와 농촌진흥청에서 정밀검사를 위해 농장의 닭과 토양 시료를 채취한 것은 이씨가 역학조사를 요구한 날로부터 나흘이 지난 21일이었다.

◆DDT 검출 계란 유통됐나

재래닭 유정란을 생산하는 이씨 농장은 5천950㎡(1천800평)의 부지 내 9개 동(棟) 계사에서 8천500마리의 닭을 사육하고 있다. 하루 2천개의 계란을 생산해 1천800~1천900개를 상품으로 출하하고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유정란은 대도시 소비자협동조합에 출하되고 있다. 재래닭 유정란의 소비자가격은 개당 평균 700여원이다.

이씨는 소비자와 농장주에게 혼란만 가중시키는 정부의 농약 잔류물질 검사결과 발표에 대한 항의차원에서 판매를 중단했다. 이씨는 “친환경 마크를 떼고 일반 축산물로 출하가 가능하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난 15일 수거검사 이후 출하를 (스스로) 전면 금지하고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씨가 보관하고 있는 물량은 1만4천개다.

DDT가 검출된 또 다른 농장인 경산 I농장은 6천859㎡ 부지 내 3개 동 계사(700㎡)에서 4천500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이곳 30대 젊은 농장주 역시 “억울하다. 이 상황에서 친환경 마크를 떼고 일반란으로 판다고 해도 누가 사가겠느냐”며 당국의 대책 없는 발표에 분노감을 표시했다. 정부가 검출된 DDT는 소량인 만큼 유통에 문제가 없다고 밝혀 소비자와 농장주만 혼란에 빠뜨렸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인증·역학조사 기관 난립

농장주의 역학조사 요구에 대해 4일 만에 정부기관이 나섰으나 조사기관이 분산돼 농가에 또 다른 혼란을 주고 있다. 21일 오전 이씨 농장에 경북도동물위생시험소 직원이 방문해 닭을 수거해 갔다. 이후 오후에는 농촌진흥청에서 토양오염 및 수질검사를 위해 관계자가 방문했다.

무엇보다 민간 친환경 인증기관의 난립으로 사후 관리 및 재인증 절차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당초 농산물품질관리원 한 곳이 친환경인증 기관으로 업무를 수행했지만 인증업무가 2000년부터 민간에 이전됐다. 민간인증 기관은 우후죽순으로 난립해 전국에 64곳이나 된다.

이씨 농장은 2009년 6월 최초로 민간인증 기관으로부터 친환경인증을 받았다. 친환경 인증 항목은 수질검사, 축사 및 사육조건, 동물복지, 질병관리, 경영자료 등이다. 토양검사는 아예 빠져 있다. 매년 갱신하는 재인증 항목에도 수질검사는 있으나 토양성분 검사와 잔류농약 검사는 없다.

축산업계는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축산농가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관리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영천=유시용기자 ysy@yeongnam.com
경산=최영현기자 kscyhj@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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