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종교와 세금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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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1   |  발행일 2017-08-21 제31면   |  수정 2017-08-21
[월요칼럼] 종교와 세금
허석윤 논설위원

우리 사회에는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더러 있다. 종교인 비과세만 해도 그렇다. 그들은 왜 세금을 안 내도 되는가. 목사나 승려가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거룩한 존재라서 나라에서 면세 혜택을 줄 정도인가. 적어도 비종교인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성직자의 추문과 비리를 일일이 들먹일 필요도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종교가 세속화하고 타락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그럼에도 여태껏 종교계가 ‘면세 구역’으로 보호받아 온 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을 것이다. 종교계의 반발은 겉으로 드러난 이유일 뿐이다. 그보다는 종교권력과 정치권력 간 야합이 근본 원인일 터이다.

종교인 과세 주장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1968년 7월에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은 과세의 공평성 원칙을 내세워 성직자에게도 갑종 근로소득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국세청은 종교인 세원 포착을 위한 조사에 들어갔으나 이듬해 돌연 중단됐다. 종교계의 조직적 반발과 정치권 로비가 주효했던 것이다.

그 이후 50년이 지나도록 종교인은 과세의 성역으로 남아 있다. 그동안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정치권이 모르쇠로 일관했던 탓이다. 그러다 더 이상 여론의 압력을 버티기가 힘들다고 판단했는지 2015년에서야 종교인 과세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나마도 정치인들은 면피하려고 법 시행일을 2년 이상 유예시켰다. 이에 따라 예정대로라면 내년부터 종교인 과세법이 시행돼야 하지만, 불길한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번에도 정치권이 전위대로 나섰다. 이달 초 국회에 종교인 과세 연기 법안이 제출됐다. 대표 발의자는 더불어민주당 김진표 의원이었다. 4선의 중진인 김 의원은 새 정부 들어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수장을 맡았을 정도로 잘나가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문재인정부가 하려는 일에 어깃장을 놓는 것은 대단한 아이러니다. 김 의원은 종교인 과세 연기 이유로 준비가 덜돼서 심각한 부작용과 마찰이 우려된다는 점을 내세웠는데 참으로 궁색한 논리다. 2년이나 되는 유예기간에도 준비가 모자란다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보다는 자신이 현직 교회 장로라서 총대를 멨다고 하는 게 양심적인 신앙인의 자세가 아닐까. 김 의원의 법안에 같이 이름을 올린 여야 의원 25명도 마찬가지다. 그들 대부분도 교회에서 한자리씩 맡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종교인 과세 법안 자체도 국민 눈높이에는 못 미친다. 종교계의 주장을 최대한 받아들여 종교인이 버는 돈을 근로소득이 아닌 사례금 성격의 기타소득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세 대상 종교인은 4만6천명, 세수는 100억원 정도에 그칠 것으로 추산된다. 사실상 종교인 대부분의 세 부담이 거의 없는 셈이어서 천주교, 불교뿐만 아니라 개신교 내에서도 수용 입장을 보이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유독 대형 교회들만 극렬하게 과세 저지 운동을 펼치고 있는데, 그 속내가 너무 뻔히 보이는 게 더욱 문제다. 대형 교회들은 종교의 가치나 특수성 등을 과세 반대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이는 사실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 해외 사례라도 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종교인 과세를 안 하는 나라가 우리 빼고 한 곳도 없으니 답답할 수도 있겠다.

한국의 대형 교회라고 하면 많은 이들은 유명 목사의 무소불위 권력과 막대한 수입, 교회 세습과 금권 선거, 탈세, 부동산 투기, 정치 개입, 성 범죄 등을 주로 떠올린다. 이는 일부 목사들이 본래의 사명보다는 부와 권력에 탐닉하면서 생긴 필연적인 결과일 것이다. 진정 그런 사정이라면 숨기고픈 게 많을 터인데, 그들이 두려운 것은 세금 몇 푼 내는 게 아니라 혹시 있을지 모를 세무조사일 것이다. 종교인 과세의 당위성은 굳이 거창한 말로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권리는 다 누리되 의무는 안 지켜도 되는 성역이 있어선 안 된다. 그게 바로 적폐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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