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비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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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1 07:52  |  수정 2017-08-21 07:52  |  발행일 2017-08-21 제22면
[문화산책] 비우기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관통하는 센강은 흐르고 흘러 대서양으로 빠져 나갑니다. 센강이 대서양으로 합쳐지는 지점에 형성된 항구도시가 한적한 옹플뢰르입니다. 파리지앵과 휴가를 떠나는 이들의 워너비 휴양지이기도 한 이곳은 그 흔한 프랜차이즈 카페 하나 없는 고요한 작은 마을입니다. 파리의 반짝이는 강물은 바다를 향해 흐르며 도시의 세련된 분주함을 한줄기 한줄기 덜어내면서 이곳까지 온 듯 합니다. 이곳은 옅은 향기와 느린 풍경으로 가득합니다. 그중에 가장 바쁜 것은 바다를 건너와 변화무쌍하게 제 갈 길을 가는 구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필자는 프랑스 노르망디 한국문화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이곳 옹플뢰르에 머물고 있습니다. 경남국악관현악단 ‘휴’의 단원으로 여정에 합류했고, 바쁜 시기에 자리를 비우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었던 만큼 지내는 일주일 동안 공연 외 다른 것은 하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떠나온 길입니다. 2017년 절반을 보내며 쌓이는 일과 고민, 걱정, 욕심, 불안감, 스트레스, 끊이지 않는 생각과 생각의 꼬리물기로 지쳐 있던 마음을 쉬게 하고 그야말로 멍 때리기를 실천하여 보자!

멍 때린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있다는 말이지요. 하얗게 비우고 애써 생각하지 않고 눈을 비롯한 얼굴 근육 전체에 힘을 풀고 편안하게 가만히….

한강에서는 멍 때리기를 가장 잘하는 사람을 뽑는 대회도 열립니다. 재미로 생겨난 신조어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휴식을 잃고 쉴새 없이 뇌를 움직이는 요즘 사람들을 풍자하며 ‘무엇이 더 중요한가’ ‘어떤 삶의 모습이 행복한가’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미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글자 그대로라면 쉬울 것만 같은 멍 때리기.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아 고민입니다. 고민을 내려 놓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 고민이라니. 말장난 같지만 이 끊어지지 않는 연속의 굴레가 요즘 사람들의 괴로움을 만들고 멍 때리기가 필요한 이유를 만들 것입니다. 이 조용하고 한적한 만리 타국에서 멍 때리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걱정은 더 깊어집니다. 그야말로 웃기고 슬픈, 웃픈 이야기이지요?

생각은 비울수록 채워진다고 합니다. 멍하게 있는 동안 무심코 생각이 닿는 곳에서 우리는 뜻밖의 통찰을 얻기도 하고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기도 하지요. 그만큼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옹플뢰르에서의 남은 여정 동안 온몸에 휴식의 기운은 가득 채우고 머리는 텅텅 비우고 다시 일상에 매진할 수 있는 힘을 가슴에 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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