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도시 대구서 민간 쿨루프 첫 시공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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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21 07:23  |  수정 2017-08-21 09:05  |  발행일 2017-08-21 제6면
옥상이나 지붕, 흰색 페인트 칠하면 표면 온도 15℃ 이상 낮아져
20170821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지난 8~10일 사흘간 동구와 서구, 수성구 등 3개 지역 주택 10가구의 건물 옥상에서 차열 페인트를 발라 실내 온도를 떨어뜨리는 ‘쿨루프’ 시공작업을 벌였다. 지난 8일 자원봉사자들이 쿨루프 시공 실습하는 모습.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

전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꼽히는 대구가 열대 기후지역인 아프리카만큼 덥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이에 따라 대구에서는 더위를 식히기 위한 다양한 대비책을 펼치고 있다. 대구시는 2013년부터 지면 온도를 낮추기 위해 만촌네거리~계명대역 사이 9.1㎞ 도로 바닥에 물을 수시로 뿌려주는 ‘클린로드’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이듬해부터 지난해까지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과 2·28기념중앙공원, 김광석 길, 동성로, 근대골목 등 4곳에 쿨링포그(파이프에서 물을 안개처럼 분사하는 시스템)를 운영하고 있다. 시민들이 잠시라도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대구시가 짜낸 아이디어인데 대증요법일 뿐 폭염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시민들을 더위에서 구출할 방법은 없는 걸까.

고기능성 차열 페인트 사용
녹화사업 비해 상대적 저렴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동구 등 10가구에 시공작업

市, 작년 공공기관 8곳서 시공
“민간사업 법적 근거 없어 고민”


◆칠하기만 해도 온도 내려가

지난 8일 오전 10시 대구 중구 ‘북성로허브’ 3층.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마련한 곳에서 10년후연구소 조윤석 소장(52)이 단상에 서서 20여명의 남녀에게 “쿨루프(Cool Roof) 페인트는 칠하기만 해도 실내온도를 떨어뜨려요. 믿겨지세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조 소장이 서 있는 단상의 뒤편에 동영상 한 편이 떴다. 영상 속에는 서울의 한 옥탑방 바닥을 흰색 페인트로 칠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왔다.

조 소장은 “흰옷을 입으면 시원해지는 것처럼 흰색은 햇빛을 반사해 건물의 냉방 효과를 높여준다”면서 “건물 옥상이나 지붕을 흰색 페인트로 칠하면 여름철 실내 냉방으로 소모되는 전력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년후연구소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친환경 방법을 연구하고 시민들에게 보급한다. 이날 북성로허브에서는 쿨루프 시공교육과 실습이 진행됐다. SNS를 통해 쿨루프 시공작업에 참여신청한 시민 20명이 모였다.

기후변화와 폭염의 위험성에 대한 조 소장의 설명이 끝나고 본격적인 쿨루프 실습이 시작됐다. 쿨루프 시공 방법은 간단했다. 옥상 바닥을 청소한 뒤 흰색 페인트를 칠하면 된다.

△먼저 바닥에 묻은 흙이나 먼지를 깨끗하게 털어내고 물기를 없앤다. △페인트칠이 잘 되도록 페인트 접착용도로 사용되는 유기용제 프라이머로 밑작업을 한다. 밑작업은 일반 페인트보다 점도가 묽다 △밑작업이 마무리되면 차열페인트를 칠하는 본작업을 한다.

쿨루프 시공에 사용하는 흰색 페인트는 고기능성 옥상 차열 페인트다. 적외선을 반사하는 흰색 특수안료를 이용해 태양열을 반사하는 차열효과와 표면 열을 대기 중으로 빠르게 방출하는 고방사 효과로 기존 콘크리트의 표면온도를 15℃ 이상 줄여 준다. 콘크리트 옥상뿐만 아니라 지붕 면에도 쉽게 시공이 가능하다.

쿨루프 시공비용은 그린루프(옥상녹화)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지난해 쿨루프사업을 추진한 부산시의 시범사업 추진계획에 따르면 쿨루프의 초기비용이 ㎡당 4만7천911원으로, 그린루프(㎡당 20만1천550원)에 비해 4배가량 싸다. 수선교체비용 역시 쿨루프는 ㎡당 13만4천151원으로 그린루프(㎡당 64만4천960원)에 견줘 4.8배 차이가 난다.

차열 페인트는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지난 8일 오후 1시25분쯤 접촉식 온도계로 측정한 쿨루프 시범 시공장소의 바닥 온도는 46.4℃였다. 같은 위치에서 본 작업을 마친 뒤 다시 측정해보니, 38.7℃로 수치가 떨어졌다. 흐린 날에도 온도 저감 효과는 마찬가지였다. 비가 내린 9일 오후 1시쯤 쿨루프 시공 옥상 바닥에서 측정한 바온도는 30.8℃로 시공 전(32.7℃)보다 1.9℃ 낮아졌다.

참가자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졌다. 최동훈군(경복중 3년)은 “쿨루프 효과를 보니 과학시간에 흰색이 열을 덜 머금는다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면서 “실제로 온도가 낮아지는 걸 보니 신기하다”고 말했다. 빌라 꼭대기층에 산다는 전현아씨(여·25)는 “직접 해보니 재미있고, 저렴해서 좋다. 집 옥상에 직접 차열 페인트를 칠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한편 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지난 8~10일 사흘간 동구, 서구, 수성구 등 3개 지역 주택 10가구의 건물 옥상에 차열 페인트를 발라 실내 온도를 떨어뜨리는 ‘쿨루프’ 시공작업도 벌였다.

◆효과적인 도시열섬 저감대안

‘도시열섬’은 폭염 피해를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장소를 가리지 않는 지구온난화와 달리 도시열섬은 이름 그대로 도시에만 나타난다. 아스팔트와 고층 건물, 자동차 등이 합세해 도심에 열을 가두기 때문이다. 특히 시가지를 덮은 아스팔트는 도시 안에 열을 붙들어두는 역할을 한다. 반사율이 낮은 아스팔트는 같은 양의 빛을 받아도 더 많이 달아오른다. 이 때문에 여름철 유독 아스팔트 도로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설상가상으로 아스팔트로 달궈진 공기는 빽빽이 들어선 건물에 막혀 외부로 쉽게 빠져나가지도 못한다. 에어컨 실외기, 자동차에서 나오는 열기도 도시온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도시열섬의 강도를 낮추려면 도시의 열 자체를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대표적 방안은 산 바람이 도심으로 흐르는 통로를 열어두는 ‘바람길’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바람길을 가로막는 개발을 해온 탓에 찬공기는 도심으로 흘러들어올 수 없다. 산과 강 주변에 병풍처럼 늘어선 아파트가 대표적인 예다.

또 다른 열섬 저감대책은 도심녹화사업이다. 대구시는 과거 도심에 대규모 가로수를 심어 일정 부분 성과를 내기도 했다. 1995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시가지 곳곳에 2천만그루 이상 나무를 심었고, 1997년부터는 도심 남북을 가로지르는 신천(10여㎞, 폭 30~50m)에 연중 일정량의 유지수를 흘려보내고 있다. 하지만 도심녹화사업은 대규모로 가로수를 식재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예산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쿨루프와 그린루프는 새롭게 떠오르는 대안으로 꼽힌다. 특히 비용이 저렴한 쿨루프는 열기를 완화시킬 뿐 아니라 냉방 에너지 절약은 물론 주거환경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어 ‘일석삼조’다. 서울시는 10년후연구소와 함께 3년 전부터 서울시 거주 옥탑방 청소년 생활자를 위한 ‘쿨루프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 부산에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취약계층 100가구에 쿨루프 시공사업을 완료했다.

대구시는 지난해부터 폭염 대응 쿨루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는 사업비 1억8천400만원을 들여 지역 소방서 건물과 대구사격장, 보건환경연구원 등 공공기관 8곳에 쿨루프를 시공했다. 진치균 대구시 자연재난과장은 “민간에 쿨루프 사업을 해주려고 해도 법적 근거가 없어 공공기관에 우선적으로 시공했다. 조례를 만들어야 쿨루프 지원이 가능한데 의회에서 나서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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