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스마트쿠스 풍속도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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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8   |  발행일 2017-08-18 제23면   |  수정 2017-08-18
[조정래 칼럼] 스마트쿠스 풍속도

요즘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선 암중 자리 쟁탈전이 치열하다. 한 자리 비자마자 총알 같은 대시에 동작이 굼뜨거나 점잖을 빼는 사람은 자리 구경도 못한다. 간혹 머리 희끗희끗한 중년이 어르신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설라치면 새파란 젊은 녀석이 잽싸게 피둥피둥한 엉덩이를 들이미는 통에 해프닝이라기에는 너무 슬픈, 그래서 일순 쓴웃음과 실소를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아래위 없이 먼저 차지하는 ‘X’이 장땡이 된 이런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노년층마저 그러려니 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런 지랄 같은 풍경은 스마트폰이 바꿔놓은 풍속도이자 오래된 미래다.

지하철 노약자석이 참으로 안성맞춤이다. 지하철 당국이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됐는지 모르긴 해도, 이 같은 일종의 ‘어르신 보호구역’이 없었다면 어르신들은 앉아볼 엄두도 못냈을 테니 어쩔 뻔했나. 아찔하면서도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더 크게 다행스러운 건 시내버스는 몰라도 지하철 노약자석은 ‘성역’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막 ‘지공거사’(지하철 무임승차가 가능한 65세 이상 연령자를 지칭하는 우스갯소리 신조어)에 입문한 이들까지 앉을까 말까 눈치를 봐야 하는 ‘언터처블’의 성소라는 거다. 남녀노소 혼용석과 노약자석 사이 경계는 ‘2G폰’과 ‘스마트폰’ 사용자 사이 차이만큼 깊고도 넓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제 스마트폰 사용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나이가 들어서도 디지털 시대의 기기와 서비스를 주도적으로 사용하며 자신의 일과 삶의 영역을 변화시켜 나가는 신인류인 ‘호모 스마트쿠스’. 시공을 초월해 폰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초인간은 스마트한 업무 능력을 발휘하며 부러움을 사지만 그늘도 짙게 드리운다. 어린이에서부터 청소년, 직장인, 주부, 노인네에 이르기까지 스마트폰에 머리를 고정하고 끊임없이 손가락을 두드려대는 풍경은 군중 속의 소외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을 만들어낸다. 스마트폰 의존도는 분리공포를 자극하고, 기억을 못하거나 하기 싫어하는 ‘디지털치매’를 심화시킨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디지 로그’는 정녕 꿈일런가.

SNS 홍수시대. 아무런 영양가 없는 문자메시지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짜증나게 하고, 하필이면 점심시간에 ‘전화를 바꾸라’며 걸려오는 텔레마케팅 전화는 밥맛을 잃게 만든다. 명색이 영업을 한다는 회사나 세일즈 걸이 이렇게 개념이 없어도, 어떻게 망하지 않고 목숨을 붙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지하철 안이나 버스 주행 중 큰소리로 떠들어대는 통화는 주위 승객들의 낯 찌푸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끝날 줄을 모른다. ‘폰 프리’ 지역 지정이라도 해야 하나.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시가 최초로 ‘스몸비’ 족에게 벌금을 부과키로 했다고 한다. 스몸비(smombie)족은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를 합성한 신조어다. 스마트폰 화면에 고개 박고 길을 자율주행하는 이는 우리를 위태롭게 한다. 15∼35달러(1만6천800∼3만9천200원)의 벌금 액수로 봐서는 규제 자체가 상징적이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몸비족으로 인해 늘어나는 안전사고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에서 내놓은 고육지책이기도 하다. 권리침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죽하면 그렇게 하겠는가, 충분히 공감이 간다.

스마트폰이 대세다. 우리나라 사람 10명 중 7명 이상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보급률 세계 4위, 사용시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마트폰 관련 교통사고도 급증하고 있고, 스마트폰 중독증은 마니아층인 10∼20대뿐만 아니라 중장년층까지 빠르게 전염시키고 있다. 스마트폰 남용이고 공해다. 염치도 예의도 무시하게 하는 게 스마트폰이라면 그건 한낱 ‘어글리폰’에 지나지 않는다. 스마트폰이든 인공지능이든 그것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게 해선 안될 일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세계를 정복했던 ‘사피엔스’가 세계에 대한 지배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예언한다. 묵시록 같은 그의 계시와 통찰에 빗대 말해 보자면, 우리의 의식과 선택만이 스마트폰을 스마트하게 할 수 있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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