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지방분권이 정의다’ .7] 獨 하이델베르크로 본 살고 싶은 지역의 조건

  • 노진실
  • |
  • 입력 2017-08-17   |  발행일 2017-08-17 제3면   |  수정 2017-08-25
“‘대학 도시’ 獨 하이델베르크…우수한 인적자원이 경쟁력”
20170817
독일의 작은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대학도시’ ‘관광도시’로 유명해 대도시 부럽지 않는 인구 15만명의 하이델베르크 전경.
20170817
하이델베르크대의 역사 등을 담은 소개 책자 가장 앞부분에 나오는 주제가 ‘대학과 마을(하이델베르크) 사이의 공생’이다.

인구 15만명의 독일 하이델베르크는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도시를 지칭하는 수식어는 결코 작지 않다. 우선 하이델베르크는 ‘대학도시’다. 1386년 설립된 하이델베르크대 독일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으로, 5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최근 별세한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도 이 대학 출신이다. 하이델베르크대의 영향으로 이 도시 인구 상당수는 교수와 학생, 대학 종사자 등이 차지한다. 또 하이델베르크는 ‘관광도시’이기도 하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연중 하이델베르크를 찾는다. 독일에서는 수도와 거리가 많이 떨어진 것이 별로 약점이 되지 않는다. 독일 지방도시에 사는 지역민들을 만나 그들에게 ‘살고 싶고 매력적인 지역의 조건’과 지방자치에 대해 들어봤다.


명문대, 수도권에 몰려있지 않고
전국에 분포 대학마다 장점 달라

지방도시마다 정체성·개성 뚜렷
각자의 방식대로 ‘지방자치’ 구현



하이델베르크대 피터 교수 “분권·균형발전으로 지방大 경쟁력 높아져”

20170817

“독일에는 지방대학이라고 해서 평가절하되는 문화가 없습니다. 지방분권이 잘 돼 있어 지방과 지방대학이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이델베르크대 피터 미어스버거 교수(지리학과)의 말이다. 취재진은 하이델베르크대에서 이 대학의 명망있는 교수 중 한 명인 피터 교수를 만나 독일의 지방대학과 지방분권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피터 교수는 “독일은 유명 대학들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지 않고 전국에 골고루 퍼져 있다. 또 각 대학마다 갖고 있는 경쟁력과 장점이 다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 지방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이라고 했다. “지방분권 성격이 강한 독일에서는 지방대학들이 중앙정부에만 재정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에도 재정을 요청한다. 바덴뷔르템베르크주(하이델베르크가 속한 주))나 바이에른주는 재정력이 좋은 주(州)이기 때문에 해당 주정부의 대학들은 더 많은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연구비 등에 대한 더 많은 지출이 가능해지니 대학의 퀄리티(質)도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피터 교수는 하이델베르크가 경쟁력을 갖는 요인 중 하나로 지리적 위치와 주변에 산재한 기업체·연구기관을 꼽았다. 대학도시의 우수한 인적자원과 질 좋은 일자리의 조화가 이 도시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그는 “하이델베르크는 지리적·문화적 위치가 아주 좋다. 작은 지방도시지만, 사람들이 안정감을 느끼고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다. 국제공항이 있는 프랑크푸르트와 가깝고, 베를린이나 뮌헨 등 대도시보다 범죄율도 낮고 더 안전한 편”이라며 “또 하이델베르크 주변에는 화학이나 자동차 관련 기업들이 많다. 바스프(BASF-세계적인 독일의 화학기업)와 에스에이피(SAP-독일의 소프트웨어 기업)가 가까이 있고, 유명 자동차 기업들도 근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처럼 하이델베르크가 속한 바덴뷔르템베르크주는 취업이나 학문을 위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하이델베르크 청년 에네스 “지방차별 받은 적 없고 대도시 갈 이유 없어”

20170817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 자랐고, 이 도시에서의 삶이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대학도 이곳에서 다닐 겁니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된 하이델베르크 청년 에네스씨는 청소년의회 의장 출신이다. 하이델베르크 청소년의회는 14~19세 청소년 20~30명으로 운영되며, 회의를 통해 지역사회 및 청소년 정책과 관련된 다양한 안건에 대해 논의하는 기구다. 청소년의회 등을 통해 하이델베르크 학생들은 일찍부터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지방자치를 배우고 있다. 에네스씨 역시 아직 젊은 청년이지만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았다.

에네스씨는 “청소년의회에서 4년 동안 활동을 했는데 2년은 평의원을 했고, 2년은 의장을 지냈다. 실제 정치인들이 직접 의회에 와서 청소년들과 토론을 하기도 하고, 정치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며 “하이델베르크 청소년의회에서는 매년 8천유로의 예산을 지원받아 직접 집행한다. 그 돈은 청소년스포츠 관련 대회나 다른 지역 청소년들과의 토론회 등에 사용한다. 또 우리가 의회에서 결정한 사안은 하이델베르크시에 전달한다. 예를 들어 최근 하이델베르크가 새 체육관을 만들면서 체육관 규모 등에 대해 청소년의회에 의견을 물었고, 청소년의회에선 그에 대해 토론을 하고 시에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에게 지방자치와 지역의 정치에 대해 가르친다고 했다.

취재진은 그에게 ‘지방도시를 떠나 수도권 대도시로 가야 하는 필요성을 못 느끼는지’ ‘지방도시에 산다는 이유로 차별이나 비하 같은 것을 경험한 일은 없는지’에 대해 물었다.

에네스씨는 굳이 학업을 위해 하이델베르크를 떠나 대도시로 가야 하는 필요성을 못느낀다고 했다. 그는 “지방에 산다고 해서 무시를 받아본 적도 없고 지방도시의 젊은이들이 다른 대도시로 떠나는 것은 선택 사항일 뿐”이라며 “각 지역마다 유명 대학이 다 있다 보니 지방대학이라고 차별하지 않는다. 나 역시 하이델베르크대를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이델베르크 호스텔 사장 카멘 “도시의 개성과 여유 관광객 찾게 만들어”

20170817

“하이델베르크는 도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고, 사람들도 여유가 있습니다. 지역의 개성이 지역을 살아있게 합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는 카멘 슈미트씨. 독일 콘스탄츠 출신인 카멘씨는 여행을 좋아해 세계 곳곳을 여행한 뒤 하이델베르크의 매력에 빠져 이곳에서 호스텔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작은 지방도시에 전 세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카멘씨는 그 이유 중 하나가 도시의 ‘개성’이라고 했다.

독일은 지방도시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수도권의 도시 형태나 삶의 방식을 따라 간다거나 비수도권의 문화를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각자의 지방자치를 구현한다. 이러한 점이 관광산업에도 플러스 요인이 되고 있다. ‘굴뚝없는 산업’인 관광업 발전에도 지방분권은 톡톡히 기여를 하고 있었다.

카멘씨는 “관광업 종사자 입장에서 볼 때 독일 도시마다 고유의 정체성과 개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지역관광업에 큰 도움이 된다”며 “하이델베르크는 유명한 하이델베르크성을 비롯해 오래된 다리, 하이델베르크대 등이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도시 분위기와 대학과 학문의 도시라는 정체성이 있고, 이는 관광객들이 이 도시를 찾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 역시 이 도시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요인이다.

카멘씨는 “하이델베르크는 작은 지방도시지만, 주민들의 소득 수준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삶에도 여유가 있다”며 “주민들이 여유로운 모습으로 친절하게 관광객들을 대하면서 자연스레 이 도시의 이미지가 좋아지고, 관광객들을 꾸준히 찾게 하는 매력이 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