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적폐청산, 어디로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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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6   |  발행일 2017-08-16 제31면   |  수정 2017-08-16
[영남시론] 적폐청산, 어디로 가나
박상병 정치평론가

적폐(積弊),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말한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과거의 폐단을 청산하고 그 위에 새로운 가치나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이 결코 순조롭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는 뜻이다. 특히 현대 정치사는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구태의 폐단이 켜켜이 쌓여있는 상징적인 영역이다.

지난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던 ‘촛불민심’은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만 있지 않았다. 그것은 낡고 부패한 구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자는 국민적 바람을 촛불에 담아낸 것이다. 마치 조국이 외세에 짓밟힐 때 분연히 일어난 의병처럼 광화문의 촛불도 한겨울의 추위마저 밀어내고 국민들 스스로 일어나 이 땅에 새로운 희망을 일궈낸 것이다. 그 결과로 ‘문재인정부’가 탄생했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도 ‘피플 파워’, 즉 ‘국민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문 대통령이 화답할 차례다. 문 대통령은 촛불을 든 국민의 함성을 외면하지 않았다. 탄핵정국에서 갑자기 치러진 대선, 그리고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새 정부였지만 문 대통령은 출범 70여일 만에 향후 5년의 국정계획을 담은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그리고 제1호 국정과제에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 의지를 담아 국민들의 함성에 화답했다. 100개의 국정과제 가운데 그 첫 번째라는 상징적인 의미는 결코 간단치 않다. 사실상 문재인정부의 운명을 가늠할 ‘승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후속 조치는 더디고 답답하다. 북한의 군사 도발에 타이밍을 잃었고, 인사 논란에 발목이 잡히는 듯했다. 뚜렷한 액션플랜 없이 허공에 깃발만 나부끼는 형국이었다. 게다가 적폐청산을 위한 입법적 수단인 ‘협치’에 대한 신뢰마저 추락해버렸다. 그렇다 보니 뭐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 혈세가 투입돼야 할 주요 국정현안 상당 부분이 문 대통령의 일방통행이나 졸속으로 발표되는 상황은 절박하고 초조한 최근의 속사정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즈음에 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100일(17일)을 앞두고 ‘적폐청산위원회’를 구성하고 문재인정부 지원에 나섰다.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 제1호를 집권당 차원에서 입법화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다. 적폐청산의 시작은 청와대와 정부가 할 수 있겠지만 그 종착역은 국회일 수밖에 없다. 인적 청산과 사법처리 등도 많겠지만 대부분은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제도화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청산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을 보는 시선은 간단치 않다. 우선 청와대와 정부의 의지가 갈수록 미덥지 못하다. 보여주기식 발표나 말잔치는 넘치지만 도대체 무엇이 적폐이며 누가 어떻게 청산할 것인지에 대한 전체적인 로드맵이 없다. 특히 적폐의 대상이 어느 날 갑자기 적폐청산의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은 낯설다 못해 냉소적이다. 적폐청산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임기 초가 그 시점이라면 지금 이렇게 시간을 끌 문제가 아니다. 여론이나 선거용 이벤트로 변질돼서는 더욱 곤란하다.

아마 민주당이 보다 못해 나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이 됐지만 적폐청산 발표 외에는 뭐 하나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보니 지켜만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오는 정기국회를 입법화의 적절한 시점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더 미덥지 못하다. 민주당이 들고 나올 적폐청산 입법화에 어떤 야당이 순순히 동의해 주겠는가. 적폐의 진상도, 그 대안도 아직 공론화조차 못한 마당에 여당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야당이 어디 있겠는가. 도대체 무슨 재주로 입법화에 나설지 참으로 궁금한 대목이다. 국민 여론 운운하며 말잔치로 시간을 끌겠다는 것인가. 다시 야당을 비난하다가 정말 내년 지방선거를 최적의 타이밍으로 보는 것일까. 적폐청산의 대업마저 당리당략의 수단으로 변질되어선 안 된다. 부디 노무현정부의 아픈 교훈을 잊지 않길 바랄 뿐이다.박상병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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