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이방원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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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5   |  발행일 2017-08-15 제27면   |  수정 2017-08-15
[CEO 칼럼] 이방원을 위한 변명

태종은 조선 3대 임금이요, 세종대왕의 아버지다. 우리에게는 이방원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사람이다.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요, 왕이 된 다음에는 새로운 왕조의 기틀을 세우고 세종의 태평성대가 가능하도록 자신의 전부를 바친 분이다.

태종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냉혈인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의 피를 선죽교에 뿌리고, 아버지의 세자 책봉에 반대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들을 죽였다. 왕권 강화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라면 대상을 불문하고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자기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처남 4형제를 죽이고, 심지어는 사돈이자 세종의 장인이 되는 정승에게도 사약을 내렸다. 왕위를 차지하는 과정에서 맺은 혈맹의 동지들도 권한을 남용하거나 비리가 있으면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귀양 보내고 한양 밖으로 내쳤다. 역사드라마가 요구하는 좋은 소재를 모두 갖춘 사람이다. 소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방원은 새로운 국가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 자신에게 부여된 소명이라 생각하고 이를 실천하는 데 몸을 던졌던 인물이다. 왕위가 세습되던 왕조국가에서 현명하지 못한 왕이 나타나 나라를 위태롭게 할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왕은 군림만 하고 실제 통치는 재상에게 맡기라는 정도전의 주장은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판단했다. 재상들에게 맡기라고? 역사에서 힘 있는 재상들에 의해 쫓겨난 왕이 어디 한둘인가? 권력이 주어졌을 때 이를 행사하지 않고 얌전히 어리석은 왕을 보좌하는 데만 몰두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도 신하였던 이성계가 힘없는 고려의 공양왕을 억압해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강력한 왕권만이 국가를 부흥하게 할 수 있으며 특히 나라를 연 지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강한 왕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마치 중소기업의 설립 초기에 사장이 모든 일을 도맡아 책임지고 처리해 나가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길게는 왕조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짧게는 세종을 위해 악역을 자처한 인물이다. 자신이 죽고 난 후 호방한 어머니와 장성한 외삼촌이 세종의 면전에서 “누구 때문에 왕이 된 줄 아시느냐”고 윽박지르는 상황을 상상하며 처남들을 버렸을 것이다. 개국에 공이 큰 원로대신들의 훈수 또한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이는 세종의 장인을 죽인 뒤 역적의 딸을 왕비로 둘 수 없다는 신하들의 주장을 태종이 물리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태종의 관심은 외척의 발호였지 왕비가 아니었다. 국내문제만이 아니다. 역사에는 세종의 업적으로 기록돼 있지만 왜구를 토벌하고 대마도를 정벌해 변방을 안정시킨 것 역시 태종이 상왕으로 병권을 잡고 있을 때 취한 조치다. 문약한 세종이 왕이 되는 경우 예상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는 책무를 스스로 실천한 것이다. 태종은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말했다. “세상의 모든 욕은 내가 다 짊어지고 갈 테니 주상은 오직 성군이 되시오”라고. 왕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가득 차 있을 때는 손에 피를 묻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뒤인데도 다음 왕을 위해 악역을 맡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태종의 위대한 점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세종이 되고 싶어 한다. 언론의 조명을 받고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는 일을 하려고 한다. 내일을 위해서 지금 꼭 해야 할 일이라도 욕먹는 것이라면 은근슬쩍 다음 사람에게 미룬다. 내 손에 흙탕물 묻히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태종의 악역과 정지작업이 없었다면 세종의 위대한 치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파벌과 외척의 세도 속에서 흔들리며 골방에 앉아 책만 보는 나약한 임금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 그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들을 지금 실천에 옮기는 용기를 가진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다. 우리가 이방원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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