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무슬림 편견 버려주세요”

  • 박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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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5   |  발행일 2017-08-15 제26면   |  수정 2017-08-15
20170815
박광일기자<사회부>

지난 주말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기사 한 꼭지가 눈에 들어왔다. 서울의 한 백화점이 16일부터 우리나라 유통업계 최초로 무슬림(이슬람교도) 관광객을 위한 ‘기도실’을 설치하고 본격적인 무슬림 마케팅을 펼친다는 내용이었다.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사태의 여파로 급감한 중국인 관광객 대신 최근 늘고 있는 무슬림 관광객을 공략하기 위해 백화점 측이 발 빠른 대응에 나선 것이다.

문득 얼마 전 받은 전화 한 통이 떠올랐다. 대구시가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동남아 관광객 유치에 나섰지만, 정작 이들이 먹을 수 있는 ‘할랄(HALAL)’ 음식을 파는 식당은 지역에 단 9곳뿐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쓴 직후에 걸려온 전화였다.

“어떻게 이런 기사를 쓸 수 있습니까. 할랄 음식점 늘려서 무슬림들 몰려오면 어쩌려고 그래요. 무슬림이 어떤 사람들인지 아세요? 테러리스트예요. 그 사람들이 대구에 와서 테러하면 책임질 거예요? 이 기사 당장 내리세요. 할랄 음식점 생기는 거 절대 반대합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음성은 상당히 앙칼졌다. 목소리 톤으로 봤을 때 중년 여성으로 짐작된다. 이 여성은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통화 내내 ‘무슬림=테러리스트’라는 식의 억지 논지를 펼쳤다.

황당했다. 대화를 해보려 했지만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얘기는 듣지 않고 계속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상식과 논리를 바탕으로 한 정상적인 대화는 불가능했다. 누구 말마따나 말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이길 자신이 없었다.

비슷한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 지난해 대구시가 할랄 시장 확대 추세에 맞춰 ‘한국형 할랄 6차 산업 육성사업’을 벌이려다 반대 여론에 부딪혀 결국 철회한 것이다.

당시 대구시가 추진한 사업은 식품과 화장품 등 지역 생산품의 할랄 인증을 도와 수출시장을 확대하고, 지역에도 이슬람 문화권 관광객을 유치하는 내용이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특정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들은 위 여성과 같은 논리였다.

올봄에 일본 오사카 여행을 갔을 때 대표적 번화가인 신사이바시에서 히잡을 두른 무슬림 여성들이 할랄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모습을 봤다. 시내 곳곳에서도 쇼핑백을 든 무슬림 관광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대구보다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이 훨씬 많은 오사카에서 무슬림이 테러를 저질렀다는 뉴스는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다.

무슬림 인구는 18억명으로 전 세계 인구(75억명)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그 중 IS(이슬람국가)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집단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모든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보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규탄해야 할 대상은 테러이지 이슬람과 무슬림이 아니다.

전화의 주인공에게 이런 얘기를 하자 “기자도 무슬림 아니냐”고 물었다. 참고로 기자는 천주교 신자다.
박광일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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