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강나단 미국변호사

  • 최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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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5   |  발행일 2017-08-15 제25면   |  수정 2017-08-15
美원폭 피해 한인 손해배상 요구 조정 신청 앞장
20170815
14일 오전 법무법인 삼일에서 강나단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최근 제기한 원자폭탄 투하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요구 조정신청에 “변호사 인생 전체를 걸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전개 중이던 1945년 8월6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렸다. 3일 후인 9일에는 일본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끈질기게 이어질 것 같던 일본의 공격은 이내 멈췄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다음날인 10일 일왕은 연합군 측에 무조건 항복 의사를 전했다. 이로부터 5일 뒤인 1945년 8월15일 공식 항복을 선언하면서 태평양전쟁은 막을 내렸다. 우리나라는 멀게만 느껴졌던 광복을 맞았다.

“집단말살에 가까운 불법행위
공적인 영역을 벗어난 수준
이 일에 변호사 인생 걸 생각”


하지만 광복의 기쁨 이면에는 맞바꿔야 했던 우리들의 아픔도 있었다. 원폭투하로 일본은 항복했지만, 당시 일본으로 끌려갔던 수많은 한국인들이 방사선에 노출돼 목숨을 잃거나 질병을 앓게 됐다. ‘광복의 기쁨에 숨겨진 아픔’은 후대로 전해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3일 대구의 법조계는 원자폭탄 투하 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요구하는 조정신청을 대한민국 법원에 냈다. 피고는 미국 정부와 원자폭탄 제조·투하에 연관된 듀폰, 보잉, 록히드마틴 등 3개사와 한국정부다.

강나단 미국변호사(38·법무법인 삼일)는 이번 조정신청 논의를 이끈 법조계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조정신청과 관련해 향후 미국재판에도 앞장설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대구에서 활동 중인 미국 국제변호사는 강 변호사를 포함해 단 두 명뿐이다.

애초 이번 조정신청은 최초 원폭투하 날짜에 맞춘 지난해 8월6일에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드배치 논란, 대통령 탄핵 문제 등으로 국내 정세가 혼미해 한 해 미뤄졌다.

강 변호사는 재판과 관련해 ‘주권 면책’을 큰 장애물로 꼽았다. 주권 면책이란 ‘각국 정부는 모든 민사·형사책임으로부터 면책된다’는 법원칙이다.

“주권 면책은 정부의 주권은 상대가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소송 자체를 못 걸도록 하는 거예요. 넘어야 할 제일 큰 산이죠.”

그는 또 미국 내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도 걸림돌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많은 미국인이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가 정당한 행위였다고 인지하고 있어 법원의 판단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는 이를 전환시켜야 유리해질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인 사이에서는 일본 원자폭탄 투하가 정당했다는 의견들이 많아요. 심지어 미국 학교에서도 원자폭탄 투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내용을 가르쳐요. 원자폭탄이 아니었으면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지 못했을 거라는 겁니다. 여론이 바뀌면 미 정부에도 분명 영향을 주겠죠.”

하지만 기대할 수 있는 구석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최근 주권 면책과 관련해 비교적 유연한 해석의 판례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권 면책이 공적인 부분에는 적용되지만, 사적인 계약에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쪽으로 판례들이 완화되는 움직임이 있어요. 이에 국가의 불법행위를 집중적으로 조명할 예정이에요. 미국정부가 집단말살에 가까운 불법행위를 했으니 이는 공적인 영역을 벗어난 수준으로 봐야 된다는 거죠.”

그는 “이 일에 변호사 인생 전체를 걸 생각입니다. 처음 논의가 시작됐을 때는 승산이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짧게 바라보고 뛰어든 게 아니니까 천천히 바꿔봐야죠. 제3자가 볼 때는 불가능하다고 할 거예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문제를 덮어놓고 외면할 수는 없잖아요.”

인천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강 변호사는 고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주립대를 졸업했다. 2003년 한동대 국제법률대학원에 입학해 미국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대구에는 연고가 없지만 2005년 군생활을 대구에서 한 계기로 정착해 지금까지 10년째 거주하고 있다.

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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