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택시 운전사’를 봐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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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2   |  발행일 2017-08-12 제23면   |  수정 2017-08-12
[토요단상] ‘택시 운전사’를 봐야 하는 이유
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이야기의 힘은 놀랍다.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말을 하게 되면 일상적인 언어 표현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야기의 배경이 현실을 가리키면 이야기 내용에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의미가 부여된다. 이야기의 이러한 힘은 사회역사적인 문제나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 사건들을 탐구하고 기억하게 한다. 이는 사건이 비극일 때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 모두를 짓누르는 슬픔을 끊임없이 새롭게 보고 다시 파악할 때, 비극적인 사건을 다시 그리고 함께 슬퍼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데로 나아가게 된다. 슬픔을 슬퍼함으로써 이겨내게 하는 것, 이것이 이야기의 본래적인 힘에서 유래하는 서사의 힘이다.

서사의 치유 능력을 새삼 말하는 것은 장훈 감독의 영화 ‘택시 운전사’ 때문이다. 친근하고 소박한 인상의 송강호가 택시 기사 역할을 멋지게 해낸 이 영화는, 1980년 5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빛고을 광주에 들어가서 우리 시대에 벌어진 가장 끔찍한 비극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실제 행적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힌츠페터나 그의 여정을 가능케 해 준 운전기사 김사복이 없었다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좀 더 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을 기렸다는 데서, 광주의 서사화에 ‘택시 운전사’의 몫이 뚜렷해진다.

물론 ‘택시 운전사’의 의의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대비와 대조에서 찾아진다. 한편에 서울 운전사와 외국인 기자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광주 시민들과 광주의 운전사들이 있다. 만섭의 경우에서도, 서울의 일상 속에서 학생 시위대에 대해 가졌던 잘못된 생각과 광주의 참상을 목도하면서 보이는 인간적인 행동 사이의 대조가 두드러진다. 물론 이 대조는 시간적인 것이어서, 군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경악하고 살해 위협에 직면한 후 스스로 나서서 부상자를 구하는 시점에서는 사라져 버린다. 그의 이러한 변화를 낳는 원동력은 인간으로서의 도리, 보편적인 인간애이다. 이 인간적 본성은 딸을 사랑하는 아빠이자 보통의 시민인 그가 자신과 같은 보통사람인 광주의 학생들이나 택시 기사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우리들 또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는 심정을 자아내는 이야기의 흐름을 통해서 ‘택시 운전사’는 광주의 비극이 북한군이나 몇몇 시위대의 사주에 의해 벌어진 폭거라면서 ‘광주 사태’라고 명명했던 5·6공화국의 선전이 말 그대로 날조된 거짓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우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보통사람인 택시 운전사의 눈을 통해 사건의 현장에 동참하면서 자연스레 이루어지는 사태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은, 시청각이 함께 자극되는 영화 장르의 속성에 따라 부각되는 또 하나의 대조, 곧 서울에서의 운전 장면이나 광주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일상의 흥겨움과 부산스러움, 무차별 폭행과 살육이 행해지는 광주에서의 경악·슬픔·분노가 이루어내는 대조에 의해 한층 강력해진다.

광주의 비극이란 이렇게 일상의 감각을 송두리째 뒤집는 것이었음을 보통사람들에게 널리 알린 점이 광주에 대한 서사의 흐름 속에서 ‘택시 운전사’가 갖는 의의다.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1992)와 정찬의 ‘슬픔의 노래’(1995) 등을 통해 애도와 탐색이 이루어진 위에, 임철우의 기념비적인 노작 ‘봄날’(1997)에서 역사성을 부여받고, 권여선의 ‘레가토’(2012)나 한강의 ‘소년이 온다’(2014) 등에서 다시 살아나 슬픔의 치유를 겪어 온 광주의 비극이, 이제 이 영화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다가서게 된 것이다. 슬픔은 나눌수록 줄어든다는 점을 생각할 때 ‘택시 운전사’가 관객을 모으기 위해 사용한 몇몇 과장된 요소들 또한 너그럽게 봐줄 만하다. 2017년 오늘 다시 영화로 되살려진 광주의 슬픔이 널리널리 공유되면서 그만큼 옅어지기를 바랄 뿐이다.박상준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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