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몰카 공화국

  • 배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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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2   |  발행일 2017-08-12 제23면   |  수정 2017-08-12

대한민국이 몰래카메라(몰카)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수욕장·공중화장실·지하철·탈의실·교실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지난달에는 국회의원을 아버지로 둔 현직 판사가 서울 지하철 4호선 열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여성의 신체부위를 몰래 찍은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경남 창원시 한 여자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는 40대 남성 담임교사가 설치한 몰카가 발견돼 경찰이 내사에 나섰다. 청주에서는 50대 목사가 자신의 집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해 한 집에 사는 딸의 친구를 촬영한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이제 몰카범죄는 일부 관음증 환자들의 일탈이 아니라 엄격한 도덕성과 윤리성이 요구되는 판사·교사·종교인·공무원에까지 무차별 확산되고 있다.

2010년 1천153건이던 몰카범죄 적발건수는 지난해 5천185건으로 5배 급증했다. 2006년 전체 성폭력 범죄 중 몰카범죄 비율은 3.6%에 그쳤지만 2015년에는 24.9%까지 늘었다. 성폭력 범죄 4건 중 1건이 몰카범죄인 셈이다. 피해자도 95% 이상이 여성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처벌은 솜방망이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몰카 촬영·유포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몰카범죄 피고인 10명 중 7명은 벌금형에 그쳤다.

몰카범죄 증가와 정보통신기술 발달에 힘입어 위장형 소형카메라도 빠르게 진화 중이다. 모자형·자동차열쇠형·페트병형·카드형·USB형 등 상대방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외관과 기능면에서 몰라보게 업그레이드됐다. 문제는 이들 초소형 카메라가 범죄에 이용될 소지가 크지만 나이와 직업을 불문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구입·판매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몰카범들의 수법도 지능화되고 교묘해져 드론을 띄워 해수욕장이나 아파트 안방을 몰래 엿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몰카 범죄로 인한 사회적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급기야 대통령이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몰래카메라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대책을 지시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번 기회에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을 짓밟는 몰카범죄를 뿌리 뽑을 특단의 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특수 소형카메라 소지·판매에 대한 행정적 규제를 마련하고 인격살해나 다름없는 몰카 범죄자는 더욱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배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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