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창녕 산토끼 노래동산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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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1   |  발행일 2017-08-11 제36면   |  수정 2017-08-11
동화 속 세상 같은, 동요 ‘산토끼’의 고향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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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끼 노래동산 입구. 커다란 토끼 모양의 안내소 겸 매표소가 동화 속으로 입장하는 느낌을 준다.
5세 일본인 여자아이를 만난 적이 있다. 엄마는 ‘마마’, 아빠는 ‘파파’라 부르던 아이가 ‘산토끼’ 노래를 유창하게 불러 깜짝 놀랐다.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한국인이었다. 할머니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늘 산토끼를 불러주었다고 한다. 그것은 옹알거리는 아이와 눈 맞추며 대화하는 방법이고,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방법이고, 또한 한국을 떠난 지 오래 된 자신이 한글을 잊지 않는 방법이었다.

1928년 일제시대 ‘산토끼’ 노래 발상지
터널형 동굴·체험장 등 온통 토끼 관련
산토끼동요관 앞 노래하는 토끼들 눈길
내부 전시관엔 창작자 이일래 기념관도


◆산토끼가 뛰놀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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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동굴을 지나면 토끼먹이 체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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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야!” 소리들로 왁자한 토끼먹이 체험장. 여섯 품종의 토끼들이 각각의 울타리에 모여 있다.
동요 ‘산토끼’는 그저, 그냥, 원래, 당연히 있어온 노래지 않나. 아리랑처럼 혹은 산이나 강처럼. 놀랍게도 ‘산토끼’는 일제 강점기인 1928년에 만들어진 노래란다. 작사, 작곡가도 있다. 당시 경남 창녕의 이방공립보통학교(현 이방초등학교)에 재직 중이던 이일래 선생님. 26세의 젊은 선생님은 자주 학교 뒷산을 산책했다 한다. 어느 날 갓 난 어린 딸을 안고 산에 오른 선생님은 깡충깡충 자유롭게 뛰노는 산토끼를 보게 된다. 선생님은 아이들이 그처럼 자유롭기를 염원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흥얼흥얼 가락을 지은 선생님은 집으로 돌아와 오선지에 곡을 옮긴 후 가사를 붙였다. ‘산토끼’의 탄생이다.

산토끼 뛰놀던 그 산자락에 지금 ‘산토끼 노래동산’이 들어서 있다. 공원은 2006년 경남도의 정책공모에 선정, 2013년 완공과 함께 문을 열었다. 토끼 매표소를 지나 무궁화꽃 핀 길을 따라 들어간다. 토끼 화장실을 지나고, 작은 토끼마을을 지나고, 토끼와 거북이 경주 길을 지난다. 내내 귀에 익은 동요와 만화영화 주제곡들이 잔잔히 울려 퍼진다. 귀를 기울인다. 많은 것을 기억나게 하고,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무색투명한 울림이다.

터널형의 토끼 동굴에 들어선다. 시원한 공기와 함께 진짜 동굴 속에 들어선 듯한 음향이 켜진다. 천장에는 박쥐가 매달려 있고, 오리온자리와 토끼자리가 그려져 있고, 벽에는 알타미라 동굴이나 아이의 공책에서 봄 직한 벽화들이 있다. 동굴을 빠져나오면 곧바로 ‘토끼먹이 체험장’이다. 내부에는 여섯 품종의 토끼들이 각각의 울타리 속에 모여 있다. 어른 무릎 높이의 울타리에는 철망을 친 창이 나 있고 먹이는 토끼들에게 물리지 않도록 창을 통해 준다. “토끼야!” “토끼야!” 부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간절하다. 먹이는 자판기에서 직접 구매해야 한다. 할아버지는 자판기에 느릿느릿 동전을 넣고, 기다리는 소녀는 마음이 급하다.

체험장을 나오면 산토끼 쉼터다. 삼대가 그늘에 앉아 목을 축이고 있다. 언덕 위로 건물들이 보인다. 개장을 준비하고 있는 작은 동물원이라 한다. 언덕 아래로는 알록달록한 이방초등학교가 보인다.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내려가면 다시 올라오지 못하니 되돌아 나오는 길에 들르면 좋다.


◆여기도 토끼, 저기도 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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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끼 동요관 앞의 토끼들. 버튼을 누르면 노래를 부른다.
그늘막 쳐진 작은 야외무대를 지나면 커다란 사각 토끼 모양의 ‘산토끼 동요관’이 나타난다. 건물 앞 광장에는 분수가 솟구치고, 토끼들이 나란히 서서 두 손을 모으고 ‘히~’ 웃고 있다. 토끼들은 버튼을 누르면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 따라 ‘히~’ 웃음짓고 있다. 동요관은 2층 규모다. 입구에 들어서서 정면으로 보이는 것은 상영관이다. 휴일과 주말마다 3D ‘산토끼 어드벤처’를 볼 수 있다. 내부에는 총 5개의 전시관이 있는데 토끼의 특징과 종류, 토끼에 얽힌 옛 이야기, 고(故) 이일래 선생의 일생과 업적, 동요 감상실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일래 선생님 기념관은 3전시관이다. 옛날 교실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고 이방초등학교 교사 시절의 이일래 선생님이 교탁 앞에 서 계신다. 이곳에서는 아이들보다 부모들의 눈빛이 더 반짝인다. 젊은 엄마가 풍금을 연주한다. “산토끼도 해봐.” 신랑의 말에 잠깐 생각을 하더니 이내 실수 없이 연주를 해낸다. 잊고 있었던 음표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이는 풍금을 연주하는 엄마를 놀라운 얼굴로 바라본다.

4전시관은 동요 감상실이다. 우리나라 창작동요 80년, 우리 동요가 걸어온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반달’ ‘파란마음 하얀마음’ ‘하늘나라동화’ ‘오빠생각’ ‘어린이음악대’…. 소록소록 떠오른다. 머리가 움직이기도 전에 속에서 음이 흘러나온다. 자그맣게 흥얼거리는 사람들의 눈은 골목길을 휘저으며 목청 높이던 아이 때로 돌아가 있다.

동요관 뒤쪽으로 토끼들과 함께 뛰놀 수 있는 토끼 마을, 토끼 모형과 조형물을 소재로 한 동화마을, 토끼 얼굴 모양의 숲으로 덮인 미로 정원, 놀이터 등이 이어진다. 여기도 토끼, 저기도 토끼, 산자락엔 온통 토끼다. 동산 끝자락에는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이일래 선생님의 동상이 있다. 그 발아래에도 산(?)토끼들이 뛰논다.

◆이방초등학교는 산토끼 노래 학교

이방초등학교는 ‘산토끼 노래학교’로 불린다. 교문 기둥에 토끼들이 파수병처럼 올라서 있다. 옆에는 2011년 산토끼 노래 탄생 83주년을 맞아 동창생들이 만든 한반도 석상이 나란하다. 교정의 가장자리를 따라 조용히 들어선다. 방학 중인 학교는 고요하다. 선생의 동상과 산토끼 노래비가 나란히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산토끼’ 노래는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노랫말과 우리나라 고유의 오음계 율격이 민족적 정서를 흔들었다고 여겨진다. 일제는 민족 감정을 일깨운다는 이유로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고, 선생은 스스로를 숨겼다. 이후 한동안 ‘산토끼’는 작사, 작곡 미상의 노래였다. 산토끼의 창작자가 밝혀진 것은 1975년 ‘이일래 조선동요 작곡집’ 영인본이 발견되면서다. 1938년에 출판된 작곡집은 일제의 탄압으로 절판 위기에 놓였고, 이를 호주사람 에드몬드 뉴 목사가 모두 사들여 외국으로 배부했다 한다.

산토끼 노래비 건립 때 선생은 그 자리에서 말했다 한다. “산토끼의 작사 작곡자는 내가 아니라 1928년도의 우리 민족이었다.” 이제 여든을 바라보는 재일 동포 할머니는 아직 산토끼를 기억할 것이다. 이제 20대 중반이 되었을 그의 손녀는 산토끼를 기억하고 있을까.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IC로 나간다. 합천, 이방 방향 1080번 지방도를 타고 10㎞ 정도 가면 이방면 소재지다. 이방면사무소 앞에서 좌회전하면 산토끼 노래동산으로 오르는 언덕길이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입장료는 어린이 1천원, 청소년과 군인 1천500원, 어른 2천원. 휠체어와 유모차를 무료로 대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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