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내 삶의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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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10 07:54  |  수정 2017-08-10 07:54  |  발행일 2017-08-10 제21면
[문화산책] 내 삶의 쉼표
송효정 <피아니스트>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우리가 휴가를 언급할 때 사용하는 ‘바캉스(vacance)’라는 말은 ‘빈자리’를 뜻하는 라틴어 ‘바누스(vanous)’와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바카티오(vacatio)’에서 유래된 프랑스어다. 학업 또는 근무를 일정한 기간 자유롭게 쉬며, 일상에 하나의 쉼표를 만드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쉼표는 글이나 말에서 짧게 쉬는 부분을 나타내는 문장 부호뿐만 아니라, 음악에서 음을 내지 않고 쉼을 나타내는 기호로 사용된다. 쉼표 역시 악보의 음표만큼 중요한 역할을 가진다. 음악적인 움직임이 없고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수많은 의미와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위대한 작곡가와 연주자들은 쉼표가 가지는 힘을 잘 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은 “내가 치는 음표는 다른 피아니스트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음표 사이의 정지, 바로 그곳에 예술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언제, 어디에 쉼표를 그리느냐, 그 쉼표를 어떠한 타이밍으로 연주하느냐는 문제는 필자를 포함한 음악인들이 항상 고민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실제로 쉼표가 주는 멈춤의 순간이 연주자, 청중 모두에게 더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침묵이 소리를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것처럼 때로는 쉬는 것이 앞으로의 시간들을 더 활기차게 만든다. 어떤 모양의 음표와 쉼표로 각자의 미래를 그려볼지 구상해보아야 할 것이다.

‘멍 때리기’라는 말이 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넋을 놓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요즘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다. 현대인의 뇌를 쉬게 하자는 의도로 2014년부터 서울광장에서 시작되었는데, 참가자들은 심박측정기를 지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3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 현실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제대로 뇌를 쉬게 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이색 대회인 것 같다.

파스칼은 말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앉아 휴식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 우리에게 있어 ‘쉼’은 매우 중요하다. 분주한 생활 가운데서도 쉼표는 필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을 재충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휴가에는 어느 곳에서든 우리의 위치와 주변을 살펴보고, 바쁘게 살면서 놓친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해보면 어떨까. 올 여름, 좀 더 느긋하고 단단해지는 삶을 꿈꾸며 제대로 쉴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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