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종군기자가 말하는 전쟁의 속성들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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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09   |  발행일 2017-08-09 제31면   |  수정 2017-08-09
[박재일 칼럼] 종군기자가 말하는 전쟁의 속성들

정문태 기자는 한국 저널리즘의 독보적인 종군기자다. 방콕 그리고 지금은 치앙마이에 베이스 캠프를 치고 30년 가까이 국제분쟁 지역을 전문 취재한다. 그는 종군(從軍)이란 의미를 따진다면 진정한 종군기자는 없고, 오히려 국제분쟁 전문기자쯤이 맞다고 했다. 하여간 학교 동창인데 근 10년 만에 만났다. 그처럼 전쟁에 가까이 다가간 인물도 드물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지만 인상 깊은 것은 평시의 군대와 전시의 군대였다. 그는 한국의 군 지휘관들이 참 딱할 듯하다고 했다. 평시가 너무 길기 때문이라는 취지였다. 예를 들면 이른바 ‘노크 귀순’이다. 북한군이 DMZ를 횡단해 남한 초소까지 와서 군 막사에 노크할 때까지 몰랐다. 장병들은 라면을 끓여 먹고 있었던가. 난리가 났다. 국방 경계에 구멍이 뚫렸고, 군 기강이 무너졌다고. 정문태는 그건 지극히 당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평시의 군은 그렇다는 것이다. 만약 연평도에서 북한 군함이 우리 측 초계함을 겨냥해 느닷없이 포를 발사한다면 일단 맞을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것. 길을 가던 미치광이가 갑자기 나의 따귀를 갈긴다고 24시간 사주경계 하며 다닐 수는 없는 이치다.

대신 전쟁이 나면 군은 달라진다. 그가 이스라엘에서 목격한 것인데, 대학생급 이스라엘 군인들은 개인화기를 들고 맥줏집에서 밤새도록 놀고 그런단다. 쟤들이 과연 제대로 총을 쏠 수 있을까 했는데, 다음 날이면 완전히 딴 얼굴이라나. 이스라엘에서 보면 지극히 용맹스러운 정예의 용사고, 팔레스타인 측에서 본다면 무자비하게 민간인을 겨누는 거대 폭력이다. 전쟁은 그렇게 인간을 바꾼다.

대개의 우리는 영화나 TV로 전쟁을 겪는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덩케르크’는 인류 최대 전쟁인 2차대전의 단면을 보여준다. 2시간 가까운 아이맥스 화면은 관객이 딴생각할 겨를이 없게 한다. 흔히 말하는 ‘잘 만든’ 전쟁영화다. 끝없는 백사장에 모인 두려움의 장병들, 푸른 바다 위 적기에 노출된 구축함, 창공을 가로세로 휘저으며 기관총을 난사하는 전투기들. 짙푸른 우주공간, 고급 세단의 엔진 소리를 연상시키는 우주선, 산맥처럼 다가오는 파도로 가득찬 놀런 감독의 전작 인터스텔라를 연상케 한다. 카메라 앵글에 갇힌 덩케르크 속 전쟁은 그래서 심지어 아름답고 품위 있게까지 느껴진다.

평시의 무료함이 길어진 한국군은 엉뚱한 고민이 속출한다. 어머니가 소대장, 중대장에게 전화해 학점 관리하듯 아들 군생활을 부탁한다. 지휘관들은 적을 바라보는 시간보다 사고 칠 개연성의 관심사병 관리에 자신의 진급을 건다. 군은 점차 관료화된다. 육군대장과 그 사모님의 공관병 논란은 그런 부조리의 파생이다.

전쟁의 철학이 승패라면 사실 이런 것들은 본질이 아니다. 정문태 기자는 미국과 독일을 주축으로 한 나토 연합군의 옛 유고슬로비아 폭격과 코소보 진격을 상기시켰다. 근 한 달간 미사일 수천 발, 전투기 수백 회 출격으로 발칸반도 한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미군 탱크를 따라 걸어가니 그야말로 개미 새끼 한 마리 저항하지 못하더란다. 현대전의 승리는 누가 토마호크 미사일을 가지느냐에 달렸지, 라면 끓이는 사병이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 상원의원에게 한반도 전쟁 이야기를 꺼냈다. 전쟁이 나더라도 우리(아메리카) 대륙이 아닌 그쪽(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것이라고 미 대통령이 발설했다. 8월 전쟁설이 또 나온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념, 국민적 자부심, 지킬 가치가 전제돼야 전쟁에 이기겠지만, 공관병 실태 조사 어쩌고는 근본이 아니다. 상투적이지만 자주국방이다. 그 요체는 첨단무기다. 한국은 미국에 통사정해 미사일 사거리를 300㎞, 500㎞, 800㎞로 겨우 늘려왔다. 우리는 한·미 미사일 지침에의해 통제된다. 최근 우리 정부는 탄두를 기껏 1t으로 늘리는 협상에 착수했다. 우리가 이것밖에 안 되는가.

대한민국은 베이징, 상하이, 도쿄까지 최소 1천~2천㎞ 사거리의 미사일을 보유해야 한다. 북한을 넘어 사드 보복,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반갑지 않은 역사적 이웃들을 염두에 둬야 한다. 탱크를 몸으로 막는 것은 영화 속이지 현실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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