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재용 재판’ 특검 논고 뜯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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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09   |  발행일 2017-08-09 제29면   |  수정 2017-08-09
[기고] ‘이재용 재판’ 특검 논고 뜯어보니

박영수 특검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등의 혐의에 대해 논고를 하면서 징역 12년을 구형했다. 아무리 논고와 구형이 법원에 대하여 법적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 검찰의 일방적 의견이라 하더라도 필자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뇌물공여죄의 일반적 양형기준과 비교해 볼 때 구형이 지나치게 과중하다.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죄 외에 특가법상의 재산국외도피 등의 법정형을 들어 12년을 구형했지만 재산국외도피죄의 경우 본 사건의 본질이 아니라 지엽적인 수단일 뿐이며 사실상 사문화된 법률이다. 본 사건의 본질은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서로 부정한 청탁을 하고 뇌물을 주고받았느냐의 문제다. 상식적으로 이 부회장이 재산을 국외로 도피시키기 위해 정유라를 지원할 리는 없지 않은가? 특검이 뇌물공여라는 본질이 아니라 뇌물을 주는 수단인 재산국외도피의 법정형을 기준으로 구형을 한 것은 본말전도다.

둘째, 형사재판에 있어서 헌법원리의 적용 문제다. 특검은 이 사건은 전형적인 정경유착에 따른 부패범죄로, 국민주권의 원칙과 경제민주화라는 헌법적 가치를 크게 훼손했으며 따라서 엄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 모든 양형의 기준은 해당 법률이 되어야지 추상적인 헌법원리가 될 수는 없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만일 특검의 주장처럼 국민주권의 원리와 경제민주화라는 추상적인 헌법원리에 의해 모든 형사재판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결국 정치재판, 여론재판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셋째, 뇌물죄 유죄 성립과 관련한 특검의 논리 오류다. 특검은 통상적으로 그룹 차원의 뇌물 사건에서 가장 입증이 어려운 부분은 돈을 건네준 사실과 그룹 총수의 가담 사실인데, 이 사건의 경우 피고인들 스스로 약 300억원을 준 사실과 피고인 이재용이 대통령과 독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유죄가 입증된 것처럼 주장했다. 논리비약이다. 피고인들이 과연 박 전 대통령에게 300억원을 준 사실이 입증되었는가? 박 전 대통령에게 몰래 직접 준 것이 아니라 공익재단에 출연하고 정유라를 지원한 것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부정한 청탁(재단출연, 제3자뇌물죄)’과 ‘경제공동체(정유라 지원, 단순 뇌물죄) 여부’ 등으로 치열한 공방을 벌인 것이 아닌가?

독대 사실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그룹총수의 가담 사실이 입증됐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 부회장은 독대에서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주장했고, 박 전 대통령은 아예 증인 출석 자체를 거부했으며, 특검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른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도 법원은 직접증거가 아니라 간접(정황)증거로 판단했다. 결국 특검은 논고에서 어떠한 구체적인 증거나 추론과정을 제시하지 않고 단지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대통령과의 독대라는 비밀의 커튼 뒤에서 이뤄진 은폐된 진실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등의 비법률적인 주장으로 일관했다. 이는 오로지 법과 원칙, 증거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형사재판의 본질에 명백히 반한다.

특검이 차고 넘치는 증거로 ‘세기의 재판’이 될 것이라고 공언한 이 부회장의 재판도 이제 모든 심리가 끝나고 선고만 앞두고 있다. 본 건의 재판부만큼 힘들고 어려운 판단을 앞두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직접증거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간접증거만 차고 넘치는데, 이 중에서 무슨 증거를 취사선택해 어떤 추론과정을 거쳐 구성요건사실을 입증할지 모든 과정이 전적으로 재판부의 자유심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절대 정치적 고려나 여론을 의식해서는 안 되며 오로지 법과 원칙, 증거에 의해서만 판단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사법부의 독립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못지않게 여론으로부터의 독립도 중요해졌다. 서정욱 (법무법인 민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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