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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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07   |  발행일 2017-08-07 제30면   |  수정 2017-08-07
청년의 암울한 현실 앞에서
가치 중심 꿈을 강조한다면
너무 잔인한 일일 것이지만
과정중시의 가치 중심 꿈은
행복한 대가를 꼭 제공한다
20170807
최현묵 대구문화 예술회관 관장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벌써 50년 전이다. 그해 여름방학, 장래 희망을 적는 숙제가 있었다. 가난한 도시 산동네 어린애에게 장래 희망이나 꿈이 있을 리 없었다. 아무런 생각도 없고, 그럴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무심코 그 빈칸에 ‘동화작가’를 적었다. 정말 뜬금없이 떠오른 직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청소년기를 지배했고, 결국 청년기를 거쳐 희곡작가로 데뷔하는 계기로 작동하였다. 그래서 가끔 생각하였다. 그때 방학책에 의사나 변호사를 적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프리랜서 예술가 생활을 하며 경제적으로 힘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럼 아마 진짜로 의사나 변호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그랬다면 이런 경제적 어려움은 겪지 않을 텐데 하며 투덜댔다.

며칠 전 문예회관에 견학을 온 문예반 여고생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저런 대화 중에 나는 그들에게 꿈을 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꿈을 가지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의지가 작동하게 된다며, 나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작가가 될 수 없었던 어린 시절 환경이며, 심지어 공고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입대하여 5년간 복무한 상황을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작가를 더욱 꿈꾸게 되었으며, 결국에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런데 문예반 여고생들과 이야기하다가 불쑥 과연 꿈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작가라든가 의사·변호사 되는 것이 꿈이 될 수 있는가. 그건 직위나 권력, 혹은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경제적 기반을 소망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건 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이기적인 욕망 아닌가. 적어도 꿈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진실한 삶을 밝히는 작가가 되겠다, 사회의 올바른 정의를 실현하는 변호사가 되겠다, 세상에서 질병으로 고통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의사가 되겠다 같은 가치와 신념이 담긴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꿈이라면 직위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의 약속이 되어야 할 것 같았다.

현실은 어떤가. 대학을 졸업하는 대다수 청년들이 기간제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이들에게 꿈은 정식 직원이 되는 것이고, 계약직은 신분 불안이 없는 무기직이 되는 것이고, 무기직은 정당한 임금과 복지 혜택이 보장되는 정규직이 되는 것이다. 이게 이들에게 꿈이다. 그나마 순조롭게 사슬이 이어지기라도 한다면 다행이다. 많은 수가 중간에 탈락되고 외면받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직위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의 꿈을 꾸라고 한다면 너무 잔인한 일인 것이다. 그래서 최근 어느 유명 소설가는 토크 콘서트에서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에게 멘토라고 하며 꿈을 가져라, 희망을 가져라, 이런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을 더 이상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을 이끄는 희망의 등대, 인생과 젊은이를 매혹시키는 등댓불 같은 것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고 해도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위악적인 고언이라고 할지라도 지나치다. 꿈은 그 자체 목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매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원했던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꿈도 없이 항해를 하는 것과 꿈을 가지고 파도를 맞이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직위 중심의 꿈을 추구하다 성공하지 못하면 실패지만, 가치 중심의 꿈을 꾼다면 성공하지 못해도 적어도 어느 정도 가치를 실천했다 할 수 있다. 작가가 되지 못하면 어떤가, 인간의 진실한 삶을 일부라도 이해하고. 변호사가 되지 못하면 어떤가, 사회의 정의를 조금이라도 실천하고. 의사가 되지 못하면 또 어떤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작은 봉사만으로도 족하지 아니한가.

그리하여 여전히 꿈을 꾸는 것은 소중하다. 왜냐하면 가치 중심의 꿈에는 실패란 없고, 비록 작을지라도 행복한 대가를 반드시 제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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