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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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07 07:40  |  수정 2017-08-07 09:27  |  발행일 2017-08-07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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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

‘철부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때 ‘철’이란 ‘계절’을 의미한답니다. ‘과일은 제철에 나는 걸 먹어야 맛있다’라고 할 때의 ‘철’이 바로 계절이죠. 다시 말해 철부지라는 것은 ‘철을 모른다’라는 뜻으로 계절이 가고 오는 것도 모를 만큼 어리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농사를 짓고 살았던 우리 민족에게 ‘철’은 제 계절을 지칭하는 것이고 철드는 행동은 제철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봄에는 싹을 틔우고 꽃 피우는 것이, 여름에는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가을에는 알알이 맺은 열매를 거두는 것이, 겨울에는 다음 해 봄을 준비하는 것이 농경 사회에서 철드는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여름에 추수한다거나 가을에 봄꽃을 피우는 것처럼 조숙하거나 미숙하게 되면 최고의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요즘은 철들지 않기를 바라고 철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이 많습니다. 환경이 많이 바뀌었지요.

농사를 주로 짓고 시기적절하게 꼭 무언가를 하고 그 성과로 일년을 나는 농경사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넘치는 정보와 문화, 톡톡 튀는 개성들, 기술 발전으로 얻은 능률과 여유. 새 시대에 걸맞은 즐거움과 보람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철들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리를 분별하여 판단하는 힘이 생기다’인데요.

나의 취미와 취향, 관심사, 업무 형태 등 그 어떤 것에서든 철들지 않는 자유분방함으로 스스로의 때와 순간을 결정하며 사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리를 분별하고, 바르고 그르고의 판단 기준이 선 성숙한 의식수준을 갖춘다면 말이지요.

마침 계기가 있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답니다. 한창 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나는 여름의 중심에서 24절기 중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가 바로 오늘(7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지요.

큰일이 난 것도 아니고 누가 봐도 여름인 지금 가을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필자는 문득 계절을 안다는 것, 그리고 철든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철 들면 무겁다’라는 농담도 있지요.

필자는 계속 철부지로 남아 나의 여름과 가을을 스스로 결정하며 지내기로 마음먹어보며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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