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즐거운 글쓰기] 예술가의 조건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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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07 07:55  |  수정 2017-08-07 13:36  |  발행일 2017-08-07 제18면
20170807

‘밖은 온통 여름이었다. 정원이며 길에는 꽃이 피었고 향기가 그윽하였다. 그러나 나는 내면적인 안정이 없기에 별로 산보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학문을 계속할 수 있을 만큼 이 어려운 말을 배우게 될는지 몰랐다. 밖에서 사람들과 만나면 아직도 낯선 세계에 와있는 느낌이 생생하였다. 늦은 저녁 시간 모든 것이 조용해지면 나는 시내를 따라 거닐거나 버드나무 아래의 벤치에 앉았었다. 조용히 흐르는 물의 광경은 나를 기쁘게 하였다. 시내는 가볍게 찰랑거리며 내 앞을 흘러 내렸다. 나는 언제나 저 물이 자꾸만 흘러서 결국은 한국 서해안에, 어쩌면 연평도에, 어쩌면 외로운 송림만에 닿으리라고 생각하였었다. … 지금 어머니는 뭘 하시는지. 주무시고 계시는지 깨어 계신지. 빈 마당에 홀로 앉아 고독의 감정에 잠겨 계시는지.

… 어디서나 달리아가 피었다. 그것은 석양에 황홀하게 빛났다. … 가을이 빨리 다가왔다. 저녁노을이 시내 위에 걸렸고 길에는 언제나 낙엽이 바람에 휘날렸다. 나는 어머님이 경작지에 가 계시리라고 생각했다. 벌써 가을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송림의 돌다리 아주머님에게 가 계시는지, 또는 강몰의 수암의 집에 가 계시는지, 산촌 석탑에 가 계시는지? …

나는 날마다 한 번씩 고향에서 소식이나 오지 않았는지 우편국에 가 보았다. 나는 언제나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고, 점점 더 불안해졌다. 나는 이미 구라파에 도착한 지 오개월이 지났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내 편지가 배달되지 않는 것 같았고 또 해마다 고향에서의 아무 소식 없이 이곳에서 살게 될까 두려웠다.

언젠가 우편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알지 못하는 집 앞에 섰다. 그 집 정원에는 한 포기 꽈리가 서 있었고 그 열매는 햇빛에 빛났다. 우리 집 뒷마당에서 그처럼 많이 봤고 또 어릴 때 즐겨 갖고 놀았던 이 식물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였던가. 나에겐 마치 고향의 일부분이 내 앞에 현실적으로 놓여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 집에서 어떤 부인이 나와서 왜 그렇게 서 있는지 물었다. 나는 가능한 한 나의 소년시대를 상세히 이야기했다. 그 여자는 한 가지 꺾어서 나에게 주었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랐다.

얼마 후에 눈이 왔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 나는 성벽에 흰 눈이 휘날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흰 눈에서 행복을 느꼈다. 이것은 우리 고향 마을과 송림만에 휘날리던 눈과 같았다.

이 날 아침, 나는 먼 고향에서의 첫 소식을 받았다. 맏누님의 편지였다. 지난 가을에 어머님이 며칠 동안 앓으시다가 갑자기 별세하셨다는 사연이었다.’ (이미륵 -‘압록강은 흐른다’ 중에서)

어머니 품속, 고향, 모국어…. 모두 한 궤에서 읽히는 말들입니다.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근간이 바로 이 원형들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누구는 이것들의 상실, 훼손, 파괴에서 오는 근원적인 삶의 불행이 좋은 예술을 낳는다고도 합니다. 저는 그 말에 반박합니다. 운명의 형식처럼 모두 겪는 슬픔과 고통의 결을 더욱더 섬세하게 감지하고 승화시키는 이가 진정한 예술가라고 말입니다.

<시인·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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