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지방분권이 정의다’ .6] 대기업 본사 지방 이전하라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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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07   |  발행일 2017-08-07 제3면   |  수정 2017-08-25
전국 1천대 기업 대구에 17개뿐…매출액으로는 0.47%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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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기업은 대부분 서울·수도권에 본사가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LG 본사 건물(왼쪽부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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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들의 본사는 대부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해줄 수 있는 기업이 수도권에 모여 있으니, 비수도권 지역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 오랜 기간 반복되고 있다.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하듯, 기업과 일자리도 지방으로 분산시킬 수는 없을까. 정부에서 대기업 본사를 수도권 외 지역에 유치하는 방안을 지역균형발전의 과제로 제시했지만,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북에는 45개, 매출액 3.25%

고향에 살고 싶어도 취업 못해
지방 청년들 일자리 찾아 떠나

어렵게 지역 기업에 입사해도
낮은 임금 불합리한 처우 불만

◆수도권에 집중된 기업들

우리나라 기업들의 본사는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2014년 경남 창원상공회의소가 금융감독원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매출액 상위 전국 1천대 기업 중 523개 업체(52.3%)가 서울에 있었다. 전국 1천대 기업의 절반 이상이 서울에 몰려있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경기도에 158개 업체(15.8%)가 있었다. 전국 1천대 기업의 68.1%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터를 잡고 있는 셈이다.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인구의 50% 이상이 살고 있고, 먹고살 만한 기업도 70% 가까이가 집중돼 있는 현실이다. 수도권 초집중이다.

서울과 경기도를 제외한 나머지 15개 시·도에 1천개 기업 중 319개가 나눠서 위치해 있다. 서울 등 수도권에 있는 기업 수에 비하면 모두 고만고만한 수다.

비(非)수도권 지자체 중 1천대 기업이 가장 많이 위치한 곳은 총 49개 업체가 있는 경남으로 조사됐다. 포항과 구미가 있는 경북이 그다음으로 기업 수(45개 업체)가 많았다. 물론, 그래봤자 서울·수도권의 6.6% 수준밖에 되지 않는 수치다.

전국 1천대 기업 중 대구에 있는 업체는 17개로, 이는 6대 광역시 중 광주 다음으로 적은 것이다. 대구에 있는 이들 기업의 매출액은 전체 1천대 기업 매출액 합계의 0.47%에 불과했다. 경북은 3.25%였다. 이에 반해 서울은 64.7%, 경기도는 18.95%에 달했다. 기업도, 돈도 모두 수도권이 좌지우지한다.

◆지역 청년들, 어디에 취직할까요?

지난해 대구경북연구원이 발표한 청년종합실태조사는 일자리를 찾아 대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출향 청년 100명을 비롯해 대구 청년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청년 중 77%가 대구에 계속 살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조사 대상자의 93.8%는 대구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취업하기를 원했다. 또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 살고 있는 청년들도 고향을 떠난 이유가 ‘직업·일자리 때문’이라는 응답이 89%를 차지했다.

이 조사결과는 대구 청년들이 대구에 살고 싶어도 취업할 만한 곳이 부족하니 대구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웅변한다. 더 넓은 세상을 찾아 고향을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과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대구 청년들 입장에선 대구에서 구할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는 그나마 꽤 탄탄하다는 몇몇 중견기업이나 대기업 계열사, 향토기업, 공공기관 정도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이들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또 일부 대구 대표기업들은 ‘고용 인권’ 관련 논란에 휩싸이는 등 전근대적 경영방식으로 스스로 기업 이미지를 추락시키고 있어, 젊은이들의 선호도를 떨어뜨린다.

‘좁은 문’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들 대구에 살며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선 적잖은 기회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지역의 일부 기업들은 ‘고향에서 일하고 살게 해주는 대가(?)’로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과 좋지 않은 처우를 합리화하기도 한다는 게 지역 직장인들의 푸념이다.

익명을 요청한 대구의 3년 차 직장인 A씨(31)는 “중소기업이지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취업을 하게 됐다. 그런데 회사에선 ‘그만둘 테면 그만둬라. 여기 그만두면 대구에서 이만한 일자리 못 구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상사·동료들도 공공연히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며 “‘잘났으면 서울 가지 왜 여기에 있나’라는 말도 들었다. 직원들에게 패배주의를 주입하는 것인데, 그런 것 때문에 처우개선이나 회사 발전도 더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시·도별 임금 및 근로시간 조사’ 결과, 대구의 5인 이상 사업체의 상용근로자 1인당 임금총액은 275만7천원으로, 전국 평균(341만6천원)에 턱없이 못 미쳤다. 같은 조사에서 서울의 1인당 임금총액은 383만3천원으로, 대구보다 100만원 이상 많았다.

대구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전국 최하위지만, 근로시간은 오히려 길다. 지난해 4월 기준 대구 노동자들의 1인당 월 평균 근로시간(실근로시간+초과 근로시간)은 179.5시간으로 전국 평균(176.7시간)보다 많았다. 서울지역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은 168시간으로 전국에서 가장 짧았다. 이런 상황이니 지역 인재는 끊임없이 유출되고, 이는 지방대 위상 추락과 지역 경쟁력 상실 등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경북대의 한 교수는 “오랫동안 강단에 섰는데, 졸업 후 대구를 떠나는 제자들의 비율이 해가 갈수록 높아졌다. 최근엔 우리 과 학생들 중 졸업 후 대구에 취업해 정착하는 비율이 채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며 “지역에 그만큼 취업할 만한 일자리가 적다는 의미가 아니겠나”라며 씁쓸하게 말했다.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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