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대통령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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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05   |  발행일 2017-08-05 제23면   |  수정 2017-08-05
[토요단상] 대통령의 메시지
최병묵 정치평론가

노태우정부(1988~93년) 때의 일이다. 국가과제에 대한 중요 보고서를 올리면 노 대통령은 ‘신중 검토’라고 적어서 내려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신중’에 비중을 두면 가급적 실행하지 말라는 얘기고, ‘검토’에 무게중심이 있다고 보면 가능하면 해보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참모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엇갈렸다. 대면(對面)보고였다면 눈치로라도 감(感)을 잡았을 것이다. 어떤 이는 추진의 뜻으로, 다른 이는 보류의 뜻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이 사례를 든 이유는 대통령 메시지에 담긴 뜻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다.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대통령의 뜻을 악용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문재인정부가 출범 석 달을 맞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정책 지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였다. 5월12일 한국공항공사를 방문했을 때 사장으로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계획을 보고받았다. 문 대통령은 두 달쯤 뒤인 7월19일 여야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는 “1년 해보고 속도조절을 더 해야 할지, 이대로 갈지 결론 낼 것”이라고 했다. ‘결론’이 달라질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에 대한 지시는 혼선 그 자체다. 국방부는 7월28일 사드부지에 대해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청와대의 뜻을 반영한 결정이었다. 이 발표는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성공시킨 후 바뀌었다. 16시간 만이었다. 문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사드 임시배치를 하라고 했다. 환경영향평가는 보통 1년 이상 걸린다. 사드에 대한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적어도 내년 하반기 이전에 사드 배치를 해선 안 된다. 사드 배치는 ‘절차’의 최종 단계가 끝난 뒤의 행동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하루도 안 돼, 절차는 시작도 하기 전에 판이 완전히 엎어졌다. 메시지가 뒤죽박죽이다. 갈피를 잡기 어렵다. 국제무대에서도 모호한 건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의원들에게 “(사드 배치를) 번복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얼마 후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서는 뉘앙스가 다른 얘기를 했다. ‘환경영향평가라는 절차적 정당성으로 시간을 확보하고 그 기간 중에 북핵 문제를 동결할 해법을 찾아내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사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설득 논리를 동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미국에서 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메시지다. 중국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탈(脫)원전 문제 역시 같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탈원전을 약속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원전을 계속 지을 것인지 여부를 공론화위원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했다. 이미 공정률(工程率)이 28.8%에 이른 신고리원전 5·6호기 공사를 중단시켜놓은 뒤였다. 눈치가 있다면 대통령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알 터인데, 정부·여당에 의해 임명된 공론화위원회가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이뿐만이 아니다. 증세(增稅)에 대한 정부 발표가 2일 있었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님은 명백하다. 문재인정부 100대 과제에 드는 비용을 178조원이라고 추정했지만, 이번 증세로 늘어나는 재원은 연간 5조5천억원이다. 5년간 28조원이다. 추가 증세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추가증세가 없다고 한다. 신뢰성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정부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상당기간 정책 검토를 한 상태다. 우선순위까지 정했다. 대선 공약(公約)에 무리가 있거나 잘못됐다면 여기서 다 걸러졌을 것이다.

비정규직, 사드 배치, 원전 정책 등은 이미 대선 공약에도 있던 내용이다. 중요성 때문에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시나리오까지 검토해가면서 추진해야 할 일이다. 삐걱거렸을 때 감당할 부담이 측정 불능 수준이기 때문이다.

메시지는 발표했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받아들이는 사람, 즉 수용자가 알아들었을 때 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오해 없는 메시지 전달, 방향을 또렷이 알 수 있는 메시지 통일이 집권 초 성패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잣대임을 알아야 한다.최병묵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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