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참소주를 보내며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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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8-04   |  발행일 2017-08-04 제23면   |  수정 2017-08-04
[조정래 칼럼] 참소주를 보내며

나는 몇 개월 전부터 ‘참소주’를 마시지 않는다. 주점 사장이나 종업원이 주문받지 않은 채 으레 그것을 가져오면 한사코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한다. 웬만하면 업소 측 인사들을 귀찮게 하기 싫고 불필요하게 심부름 시키는 게 불편하기도 하지만 나의 소주 가려 먹기는 이제 결벽에 가깝고 고집스럽다. 나의 한 지인은 나보다 더 오래전부터 그러고 있다. 그와 내가 오랫동안 음용했던 ‘참’을 배척하는 이유는 술맛 탓이 아니라 회사, 바로 금복주 때문이다. 소비자 우롱과 갑질, 그리고 여성 차별 등이 나 같은 소비자들의 불매를 불렀다.

금복주의 갑질은 고질적인 협력업체 쥐어짜기의 일종이다. 대표이사 부사장 등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우월적인 지위를 악용해 협력업체 3곳을 상대로 수십 차례에 걸쳐 2억4천만원을 뜯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들은 피해자로부터 합의를 받아냈지만 1심에서 ‘죄질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 금복주는 지난 3월 결혼한 여성에게 강제 퇴직을 종용한 사실이 알려져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여기에 지하암반수, 대림생수 등의 물을 사용한다는 과장·사실무근의 광고로 소비자를 기만한 전과도 알 만한 사람들의 혐오를 여지껏 사고 있는 중이다.

최근 들어 부쩍 갑질 이야기가 뉴스 메이커로 등장하며 연일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미스터피자와 BBQ 등 프랜차이즈 업계의 갑질 백태(百態)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프랜차이즈 회장들의 무소불위 권력은 가히 제왕적이라 할 만하다. 지역업체인 호식이두마리치킨 최호식 회장의 비서 성추행과 호텔 강제 구인 미수 사건은 백주의 테러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엽기스럽다. 이들이 내놓은 사후 사과와 재발 방지대책은 입 발린 소리이자 하나 마나 한 임시 모면책에 불과할 뿐 반성하지 않는 천민자본가의 야수성(野獸性)만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갑질 행태보다 더 큰 문제는 갑질 당사자들의 도덕 불감증이다. 그들의 사후 대처는 변명투성이이고, 오너가 임직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무치(無恥)의 비겁함도 태연하게 자행한다. 갑질을 상습적으로 몸에 익혀 왔으니, 그게 뭐가 그렇게 죽을 죄냐는 무언의 항변도 감지된다. 금복주의 사죄와 사과가 진정성을 얻지 못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너 회장이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사과문 한 장이 달랑이니 때늦게 내놓은 상생협력 방안인들 곧이곧대로 들릴 리 만무하다. 그놈의 상생은 가진 자들만 가진 전가의 보도인가.

금복주의 실기가 참소주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뒷배로 한 배짱에서 비롯됐다면 더욱 실망스럽다. 설마 그렇지야 않겠지만 어쨌든 금복주의 어정쩡함은 시나브로 나쁜 이미지의 도수를 높여가고 있어 안타깝다. 여전히 참소주에 대한 외면과 배척의 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 속수무책이라면 역시 ‘싸구려’ 술장사란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는 거다. 적절한 음주가 오히려 건강에 이롭듯 술장사 또한 애주가들에게 적절한 기품을 갖추고 금도를 넘지 않아야 그나마 상대할 파트너로 대우받을 수 있을 터이다.

비단 금복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사과를 등한시하거나 건성건성 하기 일쑤이고, 시기를 놓쳐 아니함만 못한 비례(非禮)도 부지기수다. 사과는 상대방이 수용·용서할 때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과는 진정성을 상실했기에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미완성으로 남는다. 역으로 우리 역시 일본의 후안무치를 규탄하며 사과를 받기 위해서는 기를 쓰는 반면 사과를 건네는 데에는 인색하다. 금복주의 안일함이 못내 아쉽다.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얻는 일은 무지 힘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이와 달리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잃는 건 한순간이다. 더욱이 등을 돌린 소비자들의 발길을 다시 끌어오는 신뢰회복은 당초의 신뢰구축보다 몇 배나 힘들다. 이는 사업뿐만 아니라 정치와 인간관계 등 사람살이의 전반에 걸쳐 유사하다. 떠나간 소비심리 되돌리기에는 하기 쉬운 말로 왕도가 없다. 다만 ‘참소주로 바꿔 주세요’ 할 때까지 끝까지 구애 공세를 끈질지게 계속할 수밖에. 세월이 약이 아니고, 진인사 대천명이 정답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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