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여름방학에는

  • 박종문
  • |
  • 입력 2017-07-31 07:53  |  수정 2017-09-05 11:42  |  발행일 2017-07-31 제18면
20170731

길가 언덕 위에 핀 꽃을 볼 때 사람마다 그 반응은 다르다. 어떤 이는 몸을 낮추어 꽃을 찬찬히 살펴보며 향기를 맡아 본다. 그 과정에서 혹 입김이 꽃에 닿아 해를 끼칠까봐 일정 거리를 유지하려고 조심한다. 그 꽃만 보는 것이 아니고 주변도 살펴보며 다른 초목들에게도 눈인사를 한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온 바람에 꽃이 흔들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몸도 조용히 흔들어 본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저녁때 짧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노을이 붉게 물든다. 나그네는 그 풍경에 한참 젖어 있다가 다시 배낭을 메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던 길을 재촉한다.

무엇엔가 쫓기듯이 헐레벌떡 언덕에 도착한 나그네가 땅에 털썩 주저앉는다. 흘러내리는 땀을 대충 닦고는 배낭을 베고 누우며 주변은 보지도 않고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눈을 뜨고는 향기가 나는 쪽을 살펴본다. 코가 꽃에 닿게 해서 냄새를 맡고는 머뭇거림 없이 그것을 꺾어 모자에 꽂는다. 그러고는 바삐 길을 나선다. 저녁 강에서 활활 타오르는 노을이 그에게는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존재냐 소유냐’에서 두 종류의 생존 양식을 말하고 있다. ‘소유 양식은 물질·욕망· 지배 등에 관계하고, ‘존재 양식’은 생명·성장·사랑 등에 관계한다. 불행하게도 인류의 문명사는 꾸준히 존재 양식에서 소유 양식으로 바뀌어 왔다. 소유 양식이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모든 것은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한다. 길가의 꽃도 꺾어서 모자에 꽂아야 소유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느낌, 영감, 감사와 연민의 마음, 환희, 경이, 노을 등은 물질처럼 소유되지 않는다.

‘소외’란 주체가 객체로 전락한 상태를 말한다. ‘만들어진 것’이 ‘만든 자를 지배하고 조종하는 것’이 소외다. 인간이 찍어낸 돈이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스마트폰과 로봇이 인간의 생활을 조종하고 지배하게 되는 것도 소외다. 지적 호기심의 충족과 의문을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되는 희열과 기쁨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것도 소외다. 돈이 있어야 부모고, 공부를 잘해야 자녀라는 생각도 소외의 한 형태다. 소유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물화된다. 주객이 전도된 사회에서 인간은 가족 안에서도 외롭고 책을 읽어도 행복하거나 즐겁지 않다.

방학이다. 정확한 풀이와 정답을 요구하는 문제집을 떠나 며칠만이라도 눈길과 발길을 다른 데로 돌려보자. 그냥 일상을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는 데에 의미를 두면 된다. 서점에 들러 책 한두 권을 사서 독서 삼매경에도 빠져보자. 등장인물들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하며 슬퍼하고 분노하다가 더위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러 보자. “여름에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고 겨울에는 산과 바다로 가는 것이 좋다”라는 말이 있다. 소유보다 존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선택해 볼 수 있는 휴가 방식이라 권해보고 싶다.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시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