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너의 내밀한 이야기를 해 봐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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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31 07:41  |  수정 2017-09-05 11:41  |  발행일 2017-07-31 제15면
20170731

자신 때문에 생기는 타인의 고통에도 무감각한 아이들이 늘고 있다. A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한 학기 동안 입원하고 재활치료를 하느라 인터넷 강의와 어머니의 지도로 학년을 마쳤다. 6학년으로 진급했으나 급우들 사이에 ‘몇 달 만에 나타난 이상한 친구’가 되어 버렸다. 몸은 뚱뚱해지고 아는 척을 많이 하지만 막상 시험을 치면 신통치 않은 허당 캐릭터였다.

다친 몸의 기억이 체육시간과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몸으로 부대끼기 싫어하게 만들었으며, 오랜 병원생활에서 간호사 아줌마와 어머니와 대화하던 어투는 아이들에게 이질감을 주었다. “속상하지? 힘내!”라고 말하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견뎌야 합니다”라고 예의 있게 대답하는데 표정은 무심하고 의례적이다. 이런 것이 중1 동급생에게는 사냥감이 되는 것이다. 외모와 성적이 직접적인 낙인과 차별의 이유라면 성격과 행동은 스스로도 잘 인지하지 못하는 내면적인 영역으로 결정적 단초를 준다. 교실 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적응하지 못하면 상대에 따라 반작용이 커져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사춘기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중학생이 된 지 한 달이 지나지도 않아 SNS로 초등학교 동기들이 ‘찐따(찌질한 왕따)’였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다시 기 센 친구들을 피해 다니게 되었다. 몇 번 참다가 한 번 터지면 부적절한 대응이 되고 만다. 산만한 말투와 말의 내용과 일치되지 않는 표정과 몸짓, 아이는 그 자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B라는 친구가 괴롭히는 선봉에 서 있다. 인물이 훤하고 덩치도 있고 말투에 무게가 있다. 정치와 시사에도 관심이 있어 유명 영화에 나오는 말이나 최근 이슈가 되는 어휘로 소심한 친구들에게 가차 없이 말을 휘두르고 분위기를 순식간에 장악한다. 자신의 호불호를 과격하게 뱉는다.

담임이 의뢰하여 나와 마주 앉았으나 표정에서 마음의 흔들림이 읽히지 않았다. 한참 그대로 두었다. 가만히 있기가 불편해졌을 때 말을 붙였다. 부모님 모두 직장에 다니고 형제는 없다고 했다. 유치원 때까지 고모가 키워주었고, 초등학교 때부터는 하교 후 그 고모 댁에 가서 밥을 먹고 학원에 갔다가, 밤 9시 넘어 귀가한다고 했다.

“너도 나름대로 오랜 시간 힘들게 살았구나!” 했더니 짧게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머니는 승진 준비로 늘 바쁘고 요즘은 필라테스, 요가를 마치고 사우나까지 하고 오는데 다들 피곤해서 각자 방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했다. 사춘기 아들이 다른 친구를 무시하고 괴롭히면서 스스로 외로움을 위로하는 동안 엄마는 진중한 아들이라 별다른 걱정하지 않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듯했다.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혼자 눈뜨고 학교에 가고 캄캄한 집에 들어온다.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닌데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가 든다. 아이들의 행동은 분명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우리의 몫이다.

AI(인공지능)가 대신할 수 없는 분야 중 하나가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영역이다. 본질적으로 타인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 온전히 한 인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스스로를 아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가. 그러나 작가 마이클 커닝햄은 “인간의 삶에서 이해해야 할 모든 건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 깃들어 있다”고 일갈하고 있다.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개와 늑대의 시간, 오늘 보낸 하루를 다시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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